매일신문

[여의도 통신] 내팽개쳐진 추석민심

"불경기도 이런 불경기가 없다. 제발 먹고살게 해달라." "자식이 취직을 못 하고 있으니, 해법을 내놔라."

추석 연휴에 지역구를 다닌 국회의원들은 한아름 숙제를 떠안고 여의도로 돌아왔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아우성이고 집 없는 서민들은 치솟는 전세금에 밤잠을 설쳐야 할 지경이다.

주민들의 요구 중엔 "싸우지 말라"는 것도 빠지지 않았다. 의원들은 이 말들을 전하며 "민심의 회초리는 매서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뿔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애쓰겠다"는 다짐을 했다.

어디 한두 해 들었던 말인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호들갑이라니. 아니나 다를까, 정치권은 호된 회초리를 맞고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분노한 추석 민심을 아전인수(我田引水) 식으로 해석해 상대방 공격에만 골몰할 뿐 스스로의 몫을 감당하겠다는 자세는 보이지 않는다.

당장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여야 대표의 추석 회동 결과물(안심번호 국민공천제)을 두고 시끌벅적하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두 무리가 서로를 향해 으르릉거리고 있다. 찬성과 반대로 갈려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고 있다. 청와대까지 거들면서 싸움판은 더 커졌다.

급기야 김무성 대표는 자신을 겨냥해 나온 '청와대 관계자'의 비판을 당 대표 모욕이라며 "오늘까지만 참겠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합리적 논의는 더 힘들어진 형국이다.

여당을 내홍으로 몬 안심번호 국민공천제가 뭔가. 내년 4월에 치러질 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적용할 '총선 룰' 아닌가. 다음 총선에 나갈 후보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를 놓고 당'청이 낯 뜨거운 공방을 벌이고 있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야당 역시 그동안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 사태를 두고 극단적으로 치닫던 갈등을 가까스로 수습했으나 여전히 당내 갈등은 숙지지 않고 있다. 덧보태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발표한 선거구획정안을 놓고 여야 의원 할 것 없이 이해관계에 얽혀 단체행동 움직임까지 보이는 것도 볼썽사납기는 마찬가지다.

국민은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경기회복을 위해 매진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치권은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에만 온통 신경을 쓰고 있다. 애끓는 심정으로, 또 '이번만큼은 다르겠지' 하며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국민은 이번 추석 역시 아픈 입만 놀린 셈이 됐다.

탄식이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정쟁을 중단하고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라는 민심을 국회의원들은 진짜 듣기는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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