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상돈의 소리와 울림] TK 목장의 공천권 결투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1951년 서울 출생. 경기중고·서울대 법대. 중앙대 법대교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1951년 서울 출생. 경기중고·서울대 법대. 중앙대 법대교수'학장.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靑-김무성 간 불거진 전략공천 갈등

불통으로 담 쌓은 집권세력 민낯 보여

치졸한 권력 다툼의 場 된 대구경북

낙하산 공천 의원·유권자 모두에 책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합의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대해 친박과 비노가 각각 반발하더니 급기야 청와대가 발끈하고 나서서 그 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안심번호를 이용한 국민공천제는 자체로도 여러 면에서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제도다. 무엇보다 정당의 중요한 역할인 공천을 상향식으로 한다면서 당원을 배제하는 것은 문제라고 하겠다.

미국의 오픈프라이머리는 경선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일반 유권자에게 허용하지만 실제로 투표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집단은 당원들이다. 새누리당의 당헌·당규가 규정한 상향식 공천은 당원 투표 50%, 여론조사 50%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어느 경우나 당원들에게 경선 투표에 참여할 자격을 보장하면서도 일반 유권자의 여론을 반영하도록 한 것이다. 이에 비해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가 마련한 국민공천제는 일반선거인단을 구성해서 공천을 하도록 하고 있다. 당원 투표는 동원 투표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당원들이 모여 만든 결사체인 정당이 상향식 공천을 한다면서 당원 참여를 배제한다면 그 자체가 모순이다. 또한 안심번호를 이용한 국민공천제도가 과연 온전하게 시행될 수 있는지도 아직은 알 수 없고, 입법으로 이 제도를 모든 정당에 강요한다면 위헌 시비를 야기할 것이다.

여야 대표의 합의를 정당과 선거라는 틀에서 따져보기도 전에 이를 두고 여당 대표와 청와대가 충돌해서 잠복해 있던 여권 내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청와대는 김무성 대표를 원색적으로 비난했고, 김 대표 역시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전략공천은 절대로 없다"면서 자신의 정치생명을 거는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무리 청와대라고 하더라도 김 대표가 이렇게 강경하게 대응하면 쓸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다. 총선을 반년 남겨 놓은 시점에서 비박과 친박, 그리고 김 대표와 청와대는 각기 돌아오기 어려운 강을 건넌 모습이다.

청와대와 김무성 대표 간의 '전쟁'의 주된 무대가 대구경북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에 자기 사람을 대거 공천해서 임기 후반기는 물론이고 퇴임 후에도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기를 원한다는 것이 요즘 정가에 나돌고 있는 관측이다. 박 대통령의 그런 생각에 부응해서 청와대 비서관 등이 대구경북에 출마하려 한다면 이들은 경선을 거쳐야 마땅하다. 하지만 인물 경쟁력이 부족한 이들이 전략공천을 원하고 있어서 문제가 커진 것이다.

통상적으로 전략공천이라 함은 특정 지역구의 선거 결과가 전체 선거 판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에 당 지도부가 경선을 거치지 않고 후보자를 공천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새누리당 당헌·당규도 그런 취지로 전략공천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구경북에선 새누리당의 공천이 곧 당선이기 때문에 이 지역의 선거는 전체 선거 판도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여당에 압력을 넣어서 이 지역에 전략공천 후보를 낙하산 투입하듯이 내려보낸다면 청와대가 부당하게 선거에 개입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일개 청와대 비서관이 여당 대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서는 모습은 전에 없던 일이다. 여당 대표의 행보가 못마땅해도 청와대가 그런 식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다. 이런 경우엔 청와대와 호흡이 맞는 여당 의원이나 정무수석을 통해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하고 조율하는 것이 정상이다. 청와대 비서관과 여당 대표가 백주에 적나라한 공방을 벌이는 모습은 불통과 아집으로 담을 쌓은 집권세력의 민낯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왜 대구경북이 치졸한 권력 다툼의 장(場)이 되었나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실 대구경북 의원들은 공천을 통해 자동으로 당선되어 왔기 때문에 그들부터가 당당하지 못하다. 재선과 3선을 거치면서 지역에 뿌리를 내린 의원들이라면 그래도 이들은 지역 기반을 이유로 들어 할 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12년 4·11 총선 때 공천자 최종 발표를 하루 앞두고 낙하산 공천으로 국회의원이 된 TK 초선 의원들은 이런 논란에 대해 말을 할 자격도 없다. 청와대와 여당 대표가 공천권을 두고 'TK 목장의 결투'를 벌이는 데는 기호 1번에 무조건 투표해 온 TK 유권자들의 책임도 적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1951년 서울 출생. 경기중고·서울대 법대. 중앙대 법대교수·학장.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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