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두 달 전 일이다. "형님! 2차는 제가 아는 주점으로 가죠. 정말 맛도 좋고, 분위기도 좋습니다." 모임의 한 후배가 강력하게 추천하기에 못이긴 척 따라나섰다. 하지만 가격 대비 만족도에서 대실망했다. 안주는 별맛도 없는데 가격은 비싸고, 술값도 왠지 더 받는 듯했다. 함께 간 몇 명은 나중에 만나 '글마(후배) 뭐꼬? 완전 바가지 썼네!'라고 불쾌감을 공유했다.
#2 2주 전 일이다. 한 술자리에서 지인 소개로 처음 본 사람과 명함을 주고받았다. 별 얘기도 없었고, 동석하다 헤어졌는데 다음날부터 계속 문자메시지가 날아든다. 보험 관련 얘기다. 개인 자산운용에 관한 여러 정보를 거의 매일 한 통씩 보냈다. 뭐라 하기도 그렇고, 언젠가 보험 들라고 할까 봐 겁이 난다. 솔직히 말하면 그 문자 자체가 스팸이다.
#3 며칠 전 일이다. 몇 번 만나서 즐겁게 술'밥을 먹던 한 사업가의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어이~~ 권 기자! 내 여동생이 조폭 똘마니(범죄 집단 따위의 조직에서 부림을 당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한테 3천만원을 빌려줬다 못 받고 있는데, 아는 경찰 없나? 이 돈 받아주면 얼마 떼줄게!". 어떤 답을 줘야 할지 말이 떨어지지 않다 "한 번 알아는 볼게요"라고 끊었다. 이후 '생깠다'(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을 무시한다는 뜻의 속어).
위 세 사례는 불과 두 달 사이에 기자가 겪은 일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 이유는 어설픈 인맥을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나쁜 근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인적 네트워크를 '윈윈 전략'으로 잘 이용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으로 확신하지만 한편으론 서글프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인맥 피로도'가 이 정도였나? 안타까운 생각마저 들었다. 앞으로도 더하면 더하지, 덜할 것 같지 않은 불길한 기운마저 감지된다. 많은 사람을 안다는 것이 오히려 삶의 피곤함을 가중시킨다. 편견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 기자인데, 앞으로 사람을 가려가며 사귀어야 하나.
다른 나라에 비해 대한민국 사람들은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일상에서 인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인맥 장사가 횡행할수록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은 반비례해서 줄어들게 마련이다. 특히 인맥의 부정적 네트워크가 거미줄처럼 퍼지면 숨을 곳(반강제와 강권'권유가 없는 공간)이 없을 정도다. 아예 세상과 단절하고 살면 모를까.
사실 '아는 사람이 더하다(무섭다)'는 걸 알면서도 대한민국은 인맥 장사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사돈에 8촌, 친'인척 나아가 종친회, 초'중'고 동창회에 대학'대학원 인맥, 직장 동료부터 동호인 모임, 심지어 봉사단체까지. 조그만 연(緣)만 닿아도 인맥을 이용해 뭔가를 취하려 든다. 안면 탓에 거절하기 쉽지 않은 심리를 기막히게 이용한다. 참 손쉬운 방법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기왕지사 구입해야 할 거라면 지인을 도와주자는 일종의 바람몰이다. 인간의 보편적 심리로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대한민국 인맥 장사는 개인의 삶을 피곤하게 한다.
대한민국의 사회구조상 인맥 장사를 두부 자르듯이 끊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인맥 장사는 스스로 경쟁력을 갉아먹고, 자칫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렇다면 멀리 내다볼 필요가 있다. '아는 인맥을 이용하자'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끊을 필요가 있다. 맥도날드, 코카콜라 등을 예로 들어보자. 오로지 단일 종목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승부했다. 누가 맥도날드 햄버거, 코카콜라 탄산음료를 구매하라고 권유할 이유가 전혀 없다. 제품 자체가 인맥 장사가 필요없는 경쟁력이다.
대한민국만의 다단계식 인맥 장사는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봐도 무방하다. '창조경제'를 부르짖는 창의적 DNA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쿨(Cool)하게 인맥 장사를 벗어나서 경쟁하자. 그리고 타인을 배려하며, 혼자 당당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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