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손님이라던 사위가…."
'백년손님'이라던 사위의 지위도 언제부터인가 많이 변한 느낌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여성들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상승하자, 가정생활에서도 장인 장모의 지위가 크게 달라졌다. 이번 추석 명절을 지내면서 처가에 다녀온 사위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사위를 맞아 하고 싶었던 장인 장모의 이야기에서는 처가 어른들의 또 다른 입장을 엿볼 수 있다. 옛날 늘 어렵기만 하던 사위에서, 이제는 단호하게 할 말을 할 수 있는 사위, 아들처럼 편한 사이가 된 사위의 모습을 찾아본다.
◆사위가 털어놓는 속마음
#1. 조모 씨(40대 후반'자영업자'대구 달서구 송현동)
추석 음식은 잘 먹었습니다. 싸주신 음식(김치, 나물)도 잘 먹고 있습니다. 따님 잘 키워서 부족한 제게 시집보내 주신 것도 항상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장모님 음식 솜씨는 언제나 일품입니다. 그런데 그 딸은 영 손맛이 나지 않아서 조금 아쉬워요.(하~하~하~)
이쯤 인사치레를 하고, 제 속마음을 좀 털어놓아 볼게요. 제가 바람을 피우거나 도박을 해서 재산을 탕진한 것도 아닌데 요즘 너무 타박하시는 것 아닌가요. 이번 추석에 처가에 갔을 때도 두 분이 딸 편만 드는 말을 하니, 제가 말문이 턱턱 막혀서 대화를 계속 할 수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제 편을 들어주시면, 집으로 가서 오히려 아내한테 미안함을 느껴서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려는 마음도 들 텐데요. 열 번의 일이 벌어지면, 아홉 번은 딸 편을 들어주니 이만저만 섭섭한 게 아니었습니다.
요즘 사업이 변변치 않아 용돈을 예전처럼 넉넉하게 챙겨 드리지 못한 점은 송구합니다. 그래도 제 맘 아시죠? 죽을 때까지 당신의 사랑스러운 딸을 지켜주는 든든한 파수꾼이 될게요.
#2. 진모 씨(40대 후반'회사원'대구 수성구 황금동)
장모님! 추석 음식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텐데, 피로는 좀 풀리셨는지요. 저도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 회사에 잘 출근하고 있습니다. 이번 추석은 하루밖에 머무르지 못해 아쉽기도 했지만 제가 오래 있어봐야 서로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섭섭한 거 한 가지만 얘기합니다. 자녀 육아 문제에 관해서는 될 수 있으면 간섭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제 자식들을 키우는 데도 제 맘대로 못하니, 장모님의 입김이 너무 셉니다. 아내가 아이들을 너무 다그치면서 교육을 하는데, 저는 그게 옳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데도 아내와 애들 교육 문제로 다툴 때면, "진 서방, 내 딸의 자녀 교육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가만있게. 정 싫으면 그냥 방에 들어가서 TV나 보게" 이렇게 말해버리니, 방에 들어가서도 울화통이 터집니다.
장모님! 요즘 중년 남자들 불쌍합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받고, 집에 와도 큰 소리 한 번 못 칩니다. 장모님까지 사위 기(氣)를 팍팍 죽이니, 추석 이후에 술이 더 당깁니다.
◆장인·장모가 사위에게
#1. 백모 씨(50대 후반 장모'대구 서구 내당동)
우리 사위, 추석 용돈을 30만원이나 챙겨줘서 고마워! 난 사실 돈 받을 때가 제일 좋아. 그래도 속물이라 욕하지는 마. 요즘 시대가 그렇잖아. 그렇다고 내가 사위 왔다고 씨암탉을 삶아줄 처지도 아니고. 애지중지 키운 우리 딸을 뺏어갈 때는 사실 많이 미웠어. 벌써 결혼한 지도 10년이나 됐으니, 이제는 믿고 내 딸을 맡길게. 사실 나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데, 요즘 밖에서 딸 가진 부모들이 큰소리치는 걸 보니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더라고.
그나저나 이번 추석 음식은 별로였나. 신혼 때는 와서 맛나게 많이 먹는 모습 보면서 흐뭇했는데, 몇 년 전부터는 밥도 한 그릇만 먹고 밖으로 나가는 걸 보고 조금 섭섭했어. 난 그저 우리 사위랑 손자'손녀가 내가 만든 추석 음식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힘이 나거든.
우리 딸이 조금 부족하겠지만, 자네가 잘하면 얼마든지 알콩달콩 잘 살 거야. 기운 내고, 힘들어도 같이 파이팅하자. 자네~ 축 처진 어깨를 보고 싶지는 않아!
#2. 임모 씨(60대 중반 장인'대구 남구 대명동)
한 서방! 올 추석에도 어김없이 찾아와줘서 고맙네. 내 말은 안 해도 자네 힘든 거 잘 아네! 항상 한발 물러서서, 참는 모습을 보면 그래도 '내 딸 시집 잘 보냈구나!' 생각하게 돼. 그런데 용돈을 왜 차별하나. 장모한텐 20만원 주고, 나한테는 왜 10만원만 주나. 내년 설 명절 때는 될 수 있으면 20만원씩 줘. 아무리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다고 하지만 우리 시대 사고랑은 맞지 않아. 많이 섭섭한 건 아니다. 그냥 그렇다고 구시렁대는 거야.
한 서방! 사실 자네나 나나 동병상련일세. 나 역시 공무원 정년퇴직하고, 집안에서 찬밥 신세야. 우리 딸도 제 엄마만 챙기지, 아빠인 내 얘기는 잘 듣지도 않아. 추석에 와도 나랑은 말 몇 마디도 섞지 않는데 뭐! 그래도 내가 장인이다 보니, 체통을 지키려고 대놓고 자네 편들지 못하는 마음 이해해 주게.
참 신기하지. 남성 우월주의 사회에서 여성 상위시대로 완전히 역전됐어. 어쩌겠나. 받아들여야지. 난 그래도 자네한테 큰 믿음이 있어. 시대가 많이 변해도, 내 딸만은 상처받지 않도록 잘 챙겨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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