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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조국을 등진 조선 최초의 여류 소설가

김명순.
김명순.

김명순이라는 작가가 있다. 일본 유학생 출신의 엘리트로 나혜석과 더불어 식민지 시기를 대표하는 여성작가였다. 그녀는 해방 이후에도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머물다가, 50대 중반에 일본 도쿄의 한 정신병원에서 삶을 마감하였다. 일본에서 보낸 말년은 정신분열증과 극심한 가난으로 고통스러웠지만, 김명순은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남았던 것이다.

김명순에게 조선은 어떤 의미였을까. 김명순은 1800년대 말, 기생 출신 첩의 딸로 평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평양의 부호였지만 아버지의 신분이나 이력이 김명순의 삶을 구해주지는 못했다. '기생 출신 첩'이라는 어머니의 신분이 김명순의 삶 전반을 덮고 있었다. 어머니의 신분 때문에 김명순은 언제나 '부정한 피'가 흐르는 방탕한 여자로 인식되었다. 그녀의 품성이나 노력과 무관하게 출생신분이 그녀의 삶에 낙인을 찍은 것이다.

일본 육사 출신 애인에게 데이트 강간을 당하고, 그 사건이 언론을 통해 조선 전역에 알려졌음에도 그 파렴치한 애인은 김명순과 결혼을 냉정하게 거절한다. 김명순이 기생의 딸이었기 때문이었다. 강간 사건에 대한 조선 사회 여론이 피해자인 김명순에게 더 비판적이었던 것 또한 김명순이 기생의 딸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와 절연하고, 기독교도가 되고, 일본 유학까지 감행하지만 조선사회에서 김명순은 언제나 기생의 딸이었다. 일부일처제가 근대제도로 도입된 1900년대 조선에서 '기생'이나 '첩'이 구시대의 잔재로 치부되었던 만큼 '기생 출신 첩의 딸'이라는 신분의 한계는 김명순을 드세게 휘어잡고 있었다.

김명순의 처녀작 '의심의 소녀'(1917)는 조선 축첩제도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다. 소설 속 주인공 노인은 관료의 첩이었던 무남독녀 외동딸이 자살한 후 손녀와 더불어 표랑(漂浪)을 거듭한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력을 눈치 채자 노인이 또다시 손녀를 데리고 표랑의 길을 떠나는 장면에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아무리 표랑한들 그들이 마음을 두고 정착할 곳이 조선 천지 그 어디에 있었을까. 김명순은 자신의 신산한 삶의 여정 속에서 소설 속 어린 소녀의 운명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앞으로 자신에게 다가올 비극적 운명에 대한 예감이기도 했다.

조선 사회가 요구하는 삶과 자신이 원하는 삶 사이에서 김명순은 정신적 지향점을 찾지 못한 채 극심한 의식의 혼란과 분열을 겪고 있었다. 김명순이 정신적으로 기대려고 한 동료 문인들은 공공연하게 그녀를 성적 대상물로 조소하였다. 이런 악의에 찬 멸시와 비난 속에서 김명순이 정신분열증을 안고 조선을 등진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김명순에게 조선은 일본보다도 더 차갑고 더 낯선 타향이며 이국(異國)이었던 것이다.

조선사회는 김명순에 대해 왜 이렇게 야만적으로 대응했던 것일까. 그것은 그녀가 기생의 딸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묵묵히 수용하지 않고 당당한 인간이 되려고 했기 때문이다. 김명순이 조선의 전통적 신분질서를 전복시키려고 한 점, 바로 그 점에서 조선의 모든 기득권층이 극심한 알레르기를 일으켰던 것이다. 신분차별이 없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는 이처럼 어렵고도 힘든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새로운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는 마음속 신분차별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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