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시간, 미국의 중산층 가정. 라디오 드라마를 들으며 단란한 식사 자리를 마치려 한다. 갑자기 드라마가 중단되고 뉴스 속보가 전해진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급박하고 심각하다.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긴급 속보를 전합니다.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했습니다. 화성인들은 뉴저지주의 한 농장에 착륙했고 주요 시설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피란 행렬이 이어지고 있으며 미국은 혼란에 빠져들었습니다."
뉴스를 접한 뉴욕 시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자살을 시도한 여성이 있을 정도로 미국은 공황에 빠졌다.
1938년 10월 30일, 미국 CBS 라디오에서 실재했던 해프닝은 당시 23살의 천재 연출가 오손 웰즈가 만든 라디오 드라마 '우주전쟁' 때문에 일어났다. 핼러윈데이를 맞아 제작된 '우주전쟁'은 1898년 출간된 영국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의 동명 소설을 드라마로 만들었다. 드라마가 방송되면서 픽션임을 밝혔지만 청취자들이 빠진 집단공황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지금까지 매스미디어 역사상 가장 큰 해프닝으로 기록된 사건이며 오손 웰즈를 일약 유명인으로 만들었다.
화성은 고대부터 공포의 대상이다. 전쟁과 폭력, 불길함의 상징이었다. 화성은 망원경이 발명되기 전 육안으로 관측이 가능했다. 특유의 붉은색을 띠는 행성에 사람들은 신화와 전설을 더하며 전쟁의 신(Mars) 지위를 부여했다. 과학이 달에 토끼와 두꺼비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전까지 화성은 지구보다 진보한 문명을 가진 지적 생명체가 있다고 믿었다. 특히 1898년 '화성에 생명체가 있고 운하도 있다'고 한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의 발표 이후 화성인에 대한 공포를 현실로 만들었다.
퍼시벌 로웰은 한국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Morning Calm)로 부른 사람이다. 거의 모든 분야의 진보가 혁명적으로 일어나던 19세기 말은 문명에 대한 비판도 활발하던 시절이었다. 퍼시벌 로웰은 천문학자로 관측 결과를 중시했지만 제국주의가 극에 달하는 모습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졌다. 퍼시벌 로웰 이전에 발견된 화성 표면의 선(線)을 운하로 해석했고 운하가 있으니 생명체가 있다는 연결은 전혀 과학적이지 못하지만 당시의 비판적 지식인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허버트 조지 웰스는 당대를 풍미하던 비판적 지식인이며 문명비평가였다. '타임머신', '투명인간' 같은 작품으로 유명했고 '해저 2만리'를 쓴 프랑스의 쥘 베른과 함께 SF 소설의 개척자로 불린다. 그는 '우주전쟁'을 통해 인간의 오만과 잔혹성을 비판한다. 유럽의 탐욕으로 멸종당한 호주의 태즈메이니아인들을 이야기하면서 화성인들이 지구를 침공한다면 우리도 똑같은 모습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지난 9월 29일, 화성에 소금물이 흐르는 염숙 개울이 있다고 발표했다. 소금과 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생명체 존재 가능성은 높아졌다. 화성 유인 탐사 계획도 힘을 얻게 된다. 발표가 있은 후 스티븐 호킹의 과거 발언이 새삼 회자한다. 호킹은 외계지적생명체가 있다면 그들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했던 것처럼 지구인에게 우호적 존재가 아닐 것이라 경고했다.
그들도 인간과 같은 생명체이고 오만과 잔혹함을 해결하지 못했다면 가능한 경고다. 아직까지 화성에서 소금과 물만 발견된 것은 다행스럽다. 하지만 화성에 젖과 꿀이 흐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순간부터 탐욕도 시작될 테니 말이다. 지구인이든 화성인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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