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한글날을 전후해서 언론들에서는 예전에 명절날 성룡 영화 하듯이 비슷한 종류의 기사들을 쏟아낸다. 그 대부분은 청소년들의 무분별한 비속어와 은어의 남용 문제, 맞춤법에 대한 지식 부족, 젊은이들의 SNS상의 한글 파괴 현상을 질타하며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께서 개탄할 일이라는 말로 마무리를 하는 것들이다. 성룡이 나오는 영화는 재미있기라도 하지만 한글날에 나오는 기사들은 사람들을 꾸짖는 내용이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불편하거나 매우 식상하다.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비속어나 은어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 집단에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비속어나 은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오히려 위험한 생각이다.(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한 영화 '데몰리션 맨'에는 비속어를 쓰면 벌점을 받는 미래 세계의 모습이 나오는데, 그 세계는 아주 완벽하고 아름다운 세계가 아니라 끔찍한 세계이다.) 만약 비속어의 사용이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을 정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은 기사로 쓸 만한 거리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경우에도 사회적으로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굳이 한글날에 맞추어 쓸 필요가 없는 기사이다.
맞춤법 지식이 부족하다는 내용의 기사 역시 주로 많이 틀리는 말을 대상으로 시험을 치게 하고 그 결과가 나쁜 것을 이야기하면서 국어의 미래가 걱정된다는 식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전에 이 칼럼에서 한 번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시피 규정 자체가 현실과 맞지 않아서 생긴 경우가 많다. 사람들의 70퍼센트가 틀렸다고 하면 틀린 사람들을 질책하기 전에 규정이 올바른지를 검토해 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물론 너무 자주 규정을 바꾸어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의 실제 감각과 맞지 않는 규정을 무조건 지키라는 것도 안 될 일이다. 대신 '최솟값/최소값', '전셋방/전세방'과 같은 단어 중에서 사람들이 어느 쪽을 더 많이 선택했는지를 보여 주고, 왜 그런 반응을 했는지 분석하는 것이 훨씬 더 한글날에 맞는 기획이 될 것이다. 더불어 한글 맞춤법의 가장 민감한 문제 중 하나인 '사이시옷 규정'에 대한 학자들과 일반인들의 목소리를 담아본다면 국어와 한글의 발전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기획 기사가 될 것이다.
젊은이들의 SNS 상에서 한글 파괴 현상은 어느 신문에서나 빠지지 않고 몇 년째 계속 나오는 기사이다. 죄송하다는 말을 'ㅈㅅ'으로 쓴다든가 하는 것은 권장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쓰지 말라고 할 만한 성질의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문자언어를 음성언어처럼 사용하는 SNS라는 매체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말로 표현하는 것과 글로 표현하는 것이 다르듯이 SNS에서는 SNS대로의 표현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종대왕께서 살아계셨다면 한글을 똑바로 사용하지 않는 우리의 언어생활을 개탄할 것이라고 하지만, 세종대왕께서는 주로 한문을 사용하셨으니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지금 한글의 덕택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문맹률이 낮고, 교육 수준이 높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를 통해 핸드폰만으로도 빠르게 소통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한글날은 바로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고, 이것을 잘 발전시켜 나가는 길을 생각해 보는 날이다. 그렇다면 한글날에는 한글의 과학성이나 역사를 알려주는 기사나 사라진 훈민정음 해례 상주본의 행방에 대한 기사부터 시작해서 한글의 세계화에 앞장서는 폰트 제작자들 이야기, 한글을 공식 문자로 사용하고 있는 찌아찌아족의 변화와 같은 기사를 싣는 것이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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