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질은 학교와 지역 공동체가 얼마나 잘 협조하느냐에 달렸다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최근 몇 년 동안 창의적 체험활동 도입, 개정 교육과정 시행, 자유학기제 도입 등 학교 교육과정에 변화가 잇따르면서부터다. 이제는 지자체를 비롯한 지역사회의 인적, 물적 자원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학교 교육에 투입되느냐에 따라 교육과정의 충실도도 달라지게 됐다.
진로, 진학과 연계된 지역사회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서울, 경기, 부산 등 지자체는 학교 교육을 지원하는 데 적극적이다. 대구시도 이 같은 추세에 발맞추고 있다. 지난 5월 대구시청소년문화의집에 청소년 진로비전상담실을 개설한 것도 이러한 취지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상담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과 함께 지자체가 학교 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짚어봤다.
◆상담 프로그램의 핵심은 장기적 진로 계획에 바탕을 둔 주기적 상담
올해 고3 수험생을 둔 학부모 이모(45'대구시 서구 평리동) 씨는 최근 대입 수시모집 지원 상담을 위해 대구시 청소년 진로비전상담실을 찾았다. 학교에서 학생 개개인에게 개별적인 상담을 제대로 하기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는 데다 성적이 좋지 못한 학생에게는 그만큼 관심이 소홀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는 것을 절감한 후다.
이 씨는 "학교 선생님도 중하위권 대학에 대해서는 정보가 밝지 못해 아이가 답답해했는데 진로비전상담실에서 성적에 맞는 대학 정보를 충분히 얻었다"며 "성적이 낮은 학생들도 진로와 진학 문제에 대해 충분히 상담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고 했다.
진로비전상담실 측에 따르면 지난 7, 8월 두 달 동안 수시 상담을 받은 수험생의 절반 이상이 지역 대학과 전문대 학과 정보와 합격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학교나 학원에서는 제대로 된 상담을 받기가 어려운 학생들이었던 것이다.
고교 진학을 앞둔 중3 학생 학부모 오모(39'대구시 남구 대명동) 씨는 진로비전상담실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 오 씨는 학교에서 이뤄지는 진로 상담은 형식적인 경우가 많았고, 성적이 중위권인 자녀의 고교 진학에 대한 정보도 충분하지 않아 답답했다. 하지만 진로비전상담실에서 대학 진학까지 염두에 둔, 장기적인 진로 계획에 대해 듣고 진학할 고교를 선택할 수 있었다.
오 씨는 "전문 컨설턴트 선생님과 주기적으로 상담하면서 아이의 평소 관심 분야와 적성 등 세세한 내용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진로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어 좋았다"며 "나도, 아이도 만족할 수 있어 진학과 관련된 갈등을 겪지 않은 게 큰 다행"이라고 했다.
진로비전상담실의 상담 프로그램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한 번 상담하고 난 뒤 등록해 두면 시기에 맞춰 주기적으로 상담하면서 진로'진학과 관련해 학생, 학부모가 알아야 할 정보와 할 일을 제시해준다.
상담실 박선아 컨설턴트는 "1회 상담으로는 학생이나 학부모의 요구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 대안을 제시하기 어려운 데다 상담 후 변화를 챙겨 다시 상담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상담할 것을 권하고 있다"며 "중학생은 진로 탐색과 체험, 고등학생은 진로와 전공 선택에 초점을 맞춰 연계 활동까지 할 수 있도록 상담한다"고 했다.
◆주말 설명회, 전공 탐색 프로그램도 시행
대구시 청소년 진로비전상담실은 주말을 전후해 학년별, 시기별, 주제별로 전문 컨설턴트와 외부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진로'진학 설명회를 열고 있다. 이 설명회는 기존의 일방적인 주입식 설명회와 다르게 진행된다. 30명 미만의 소수 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설명 후 묻고 답하기, 고민을 토로하고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기 등 이른바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설명회를 진행한다. 학생, 학부모로선 궁금해하는 주제에 대해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되는 것이다.
지난달 진행된 3주짜리 학부모교실에 참석한 진모(41'대구시 중구 대봉동) 씨는 "고1인 아이 때문에 이제까지 설명회에 여러 번 다녔는데 듣고 나서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입시에 대비해야 할지 불안감이 컸다"며 "이번 설명회에서는 질문을 통해 그동안 궁금했던 점을 바로 해결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자신이 원하는 학과나 전공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전공 탐색과 이해' 프로그램도 인기다. 학생들이 관심 있는 전공 분야 대학교수나 전문가들과 만나 학과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그 학과에 진학한 뒤에는 어떤 학습 능력이 필요한지도 알 수 있게 했다.
생명공학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김영현(17) 군은 "예전엔 막연히 이름만 보고 학과를 선택하려 했던 게 사실"이라며 "이제는 내가 가진 학업 능력을 고려해 어떤 분야를 전공해야 하고 고교 때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학교 교육 분야에 있어서 지자체의 역할은?
'마을이 학교다'라는 말은 이미 일반화됐다. 하지만 지자체를 비롯한 지역사회는 여전히 교육은 오로지 학교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치부하고 있다. 전문성을 이유로 들며 기껏해야 학교 시설 개선이나 프로그램 운영에 필요한 예산 일부를 지원하는 것으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그나마도 가급적 많은 학교에 골고루 예산을 나눠주면서 생색을 내려는 의도가 깔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교육 당국 역시 외부와 벽을 쌓고 있다. 예산 지원만 바랄 뿐 지자체 등 지역사회가 학교 교육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거나 학교 프로그램을 분담하려고 하면 전문성 부족을 이유로 선을 그어버린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지역사회의 실질적인 도움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적지 않다. 특히 진로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한계가 뚜렷해 진로'직업체험, 직업인 초청 강의 등이 부실해지기 일쑤다.
진로'진학 상담과 관련해서도 학교가 감당하기 힘든 부분이 존재한다. 모든 중'고교에 진로담당 교사를 한 명씩 배치했다고 하지만 모든 학생들에게 충실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진로'직업의 세계와 세분화되는 대학 입학 전형 등에 대해 교사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생 맞춤형 상담을 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형편이다.
대구시의 청소년 진로비전상담실은 현실적으로 학교 교육이 감당하기 어려운 진로, 진학 분야의 개별 수요들을 끌어들여 맞춤형 상담과 설명회, 진로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면서 교육 만족도를 높인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한 고교 교사는 "솔직히 교육청이나 학교가 할 수 없는 부분을 도와줘 고맙다고 하고 싶은데 아직 대구의 분위기는 서울이나 부산 등에 비하면 많이 못 미치는 것 같다"며 "학교와 지역사회가 담장을 허물고 힘을 모아야 학교 교육이 더 충실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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