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미화 칼럼] 안심 못할 안심번호

박 대통령 외유 중 불거진 안심번호

탈 많은 휴대전화 여론조사에 불과

국민공천권이 오히려 면죄부 우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왜 그랬을까? 정치 신인도 아니겠다, 덩치도 있겠다 좀 신중하면 좋을 텐데 하필이면 대통령이 UN 외교차 해외순방 중일 때 분란을 자초하는 행동을 했을까. 그것도 불과 며칠 전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로 노사정 대타협을 이룬 것을 계기로 당정청(黨政靑)이 마음을 맞추고 여야가 손잡아 4대 개혁을 포함한 국정동력 확보에 열을 올려야 할 때에 안심할 수 없는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이하 안심번호…)를 도입하기로 잠정합의했는지 알 수가 없다. 안심번호… 이후 터진 당청 간 갈등으로 인해 새누리당 지지율이 떨어지는 걸로 봐서 '참 잘했어요'라는 칭찬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민들은 그 헷갈리는 '안심번호…'에 대해서 일주일 이상 소란스러운 소식들을 접하고 이제야 겨우 본인의 폰 번호를 드러나지 않도록 0505로 시작되는 가상번호를 부여받아서 하는 휴대전화 여론조사의 한 방법임을 깨닫고 있다. 그런데 그 안심번호… 방식이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을 파악하게 되면서 국민들의 불안지수는 높아지고 있다. 이 안심번호…가 밀실 공천, 갈라먹기 공천, 뒷거래 공천, 줄세우기 공천 등 수많은 문제점을 드러낸 전략 공천의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한 선의를 담고 있지만 선의가 늘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듯이 자칫하면 정치 혁신과 거꾸로 갈 수도 있다.

이 안심번호… 여론조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신뢰도 5%밖에 받지 못하는 19대 국회이지만, 현역 의원이 다시 공천권을 따내서 여의도 재입성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참 나쁜' 제도가 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추석 전, 본사가 TBC와 함께 실시했던 차기 총선 격전지 여론조사에서 특정 지역구는 현역 의원에 대한 교체지수가 유지지수보다 아주 높게 나왔다. 지난 총선 때 새누리당이 도입한 것처럼 현역 가운데 하위 20~30%를 물갈이한다고 하면 이런 지역구 의원은 당연히 물갈이 대상이다. 그런데 이 안심번호…를 들이대면 현역 의원은 아무리 시원찮게 의정 활동을 했어도 인지도가 높아서 유리한 입장이다.

게다가 비용'시간'협조'관심 등의 문제점 때문에 안심번호… 여론조사 대상을 무한정 확장하는 게 무리가 있다. 평소 수많은 조직원을 두고 있는 현역 의원에게 무조건 득이 되는 시스템이다. 명분은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안심번호… 여론조사가 실제로는 유권자의 눈 밖에 벗어난 현역 의원까지 구제해주는 '나쁜 방어판'이 될 수 있다.

반면 정치 신인은 아무리 뛰어난 역량과 전문적인 식견을 지녔다 하더라도 안심번호… 여론조사에서 인지도를 끌어올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총선 본선도 아니고 정당의 당내 공천권 확보전에 뛰어들어서 인지도를 높이려다가 자칫하면 사전선거 등 부정선거의 덫에 걸려 치명상을 입을 확률이 100%이다. 우리나라 선거법은 정치 신인들에게 아주 가혹하다. 거의 손발을 묶어두고 선거에 뛰라고 요구하는 불공정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가 제자리를 잡으려면 선진국처럼 노장청(老壯靑)이 조화를 이루도록 안심판을 설치해놓아야 하는데 대책 없는 안심번호…는 자칫 '정치 신인의 몰살'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귀결될 수 있다. 함량 미달 국회의원, 참 나쁜 의원들을 솎아낼 보완책을 찾기 힘들다면 이 제도의 도입은 재고해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정당정치제를 채택하고 있고, 정당 유지를 위해서 혈세를 지원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분기당 근 50억원에 가까운 세금을 지원받고 있다. 정당은 여론을 중시하되 정당 입장에 맞는 후보자를 찾아내서 공천권을 행사할 최소한의 의무를 지니고 있다. 집권여당의 공천권은 삿되지 않게, 진실무망하게 행사되는 범위 안에서 작동돼야 한다. 그걸 하지 않겠다면 유권자가 그 정당을 버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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