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날마다 전성기' 정우성-이정재

연예계 '두 태양' 한 작품서 다시 뜨길

이정재
정우성
이정재
정우성

멋진 외모에 부와 인지도를 갖춘 연예인들이 공개적으로 친분을 과시하며 부러움을 사는 건 흔한 일이다. 송승헌과 권상우 등 1976년생 동갑내기 '절친'들이 대표적인 예다. 1980년대 절정의 인기를 구가한 하이틴 스타 손지창과 김민종은 아예 듀엣 활동까지 하면서 동반 상승효과를 누렸다. 이처럼 연예계에 꽤나 많은 '선남선녀 절친' 무리가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1973년생 동갑내기 배우 정우성-이정재 콤비에 대한 주목도는 단연 독보적이다. 각각 1990년대에 데뷔해 뛰어난 외모로 화제몰이를 했고 현재까지 연기력을 향상시키며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는 인물들이다. 작품 외적으로도 다방면에 영향력을 드러내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태양은 없다' 이후 또 한 번 둘의 동반출연작에 대한 말이 나오고 있는 지금, 정우성-이정재 콤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1990년대 홀린 '핫'한 맛, 2000년대도 사로잡아

두 사람이 함께 출연한 작품은 1998년에 개봉된 영화 '태양은 없다'가 유일하다. 그 외에는 청룡영화상 등 시상식 무대나 화보 촬영 등이 공식적인 동반활동의 전부다. 이처럼 딱히 팀을 이뤄 활동한 것도 아닌데, 유독 두 사람은 '묶음'으로 각인돼 가는 곳마다 서로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지난해 정우성이 '마담 뺑덕'을 내놨을 때, 또 '신의 한 수'를 들고 나왔을 때 대중과 언론은 당연하다는 듯 이정재에 대한 질문을 꺼내곤 했다. 이정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최근 '암살'의 개봉에 맞춰 가진 인터뷰 석상에서,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 야외무대에서 가진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빠짐없이 정우성이 거론됐다.

앞서 태진아와 송대관이 그들 스스로 라이벌 구도를 강조하며 익살을 떨었을 때 대중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식상함을 느꼈다. 정준호와 신현준이 서로를 개그 소재로 삼으며 친분을 과시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절친한 연예인'들이 스스로 꺼내놓는 서로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대중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 역시 생명력이 그다지 길지 않다. '절친 연예인'들이 누리는 동반상승세의 지속력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힘을 잃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유독 정우성과 이정재의 콤비플레이로 생산된 각종 이야깃거리는 꽤나 긴 시간 동안 듣는 이들을 사로잡으며 생명력을 자랑한다. 심지어 대중은 '태양은 없다' 촬영 당시의 에피소드와 '왜 동갑내기들끼리 존댓말을 쓰는가' 등 수도 없이 회자됐던 내용마저도 정우성과 이정재의 입을 통해 다시 들어보려 한다. '반복'이 지루함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익숙함을 느껴볼 수 있는 진한 여운과 재미를 자아내기도 하는 법. 흔히 평양냉면을 이런 맛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1990년대에 가장 핫한 '패스트푸드'였던 정우성과 이정재가 시간이 지나 정통성과 성숙한 맛을 지닌 평양냉면계의 명성 높은 브랜드가 된 셈이다.

더 놀라운 건 이들이 기존 소비자뿐 아니라 새로운 소비층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1990년대 젊은이들을 열광케 했던 MSG의 맛으로 아이돌스타에 빠져 있는 현 10대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정우성과 이정재는 연륜으로 훈연한 '성숙한 젊음'으로 신세대를 매료한다. 과거 젊은이들을 설레게 만들었던 참신한 맛을 가공해 새로운 소비층을 만들어낼 정도니 '오래된 맛'이라고 해서 질릴 리 만무하다.

이 '맛'의 기본 베이스는 역시 두 사람이 가진 외적인 매력이다. 정우성과 이정재를 '1990년대 젊은이들을 열광케 한 패스트푸드'라고 표현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 둘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외모와 이를 기반으로 확장시킨 영역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다.

◆연예인이 동경하는 연예인

정우성과 이정재는 출발선에 섰을 때부터 남달랐다. 뛰어난 외모로 단번에 업계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고 큰 고생 없이 스타 반열에 올랐다. 당대 톱스타 고소영의 상대역으로 영화 '구미호'의 주연 자리를 따내며 신고식을 마친 정우성이나 초콜릿 CF의 원톱 모델 자리로 나서 단번에 얼굴을 알리고 드라마까지 휘저었던 이정재나 업계에서 보기 드문 파격적인 데뷔였던 건 매한가지다. 그래서 이 둘에게서는 흔해 빠진 무명 시절의 고생담을 들어볼 수 없다.

당시는 뚜렷한 쌍꺼풀의 예쁘장한 외모를 가진 중성적 매력의 남성들이 여성들의 호감을 살 무렵이었다. 이 와중에 정우성과 이정재는 미끈하게 쭉 뻗은 다리와 탄탄한 근육, 남성미가 느껴지는 마스크로 어필하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적당히 흐트러진 머리에 후줄근한 셔츠를 걸쳐입은 정우성의 내추럴한 섹시미는 당시나 지금이나 쉽게 찾아보기 힘든 독보적인 매력이다. 눈가에는 반항기가 엿보이는데 얼굴형은 차분하고 지적이다. 거칠고 강해 보이면서도 악해 보이지 않는 인상, 그래서 좌충우돌하며 살아가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외모다. 외모는 확연히 다르지만 이미지만 떠올렸을 때, 1990년대 젊은 정우성의 이미지는 한국판 제임스 딘이었다. 드라마 '아스팔트 사나이', 영화 '비트' 등이 데뷔 초 정우성의 이런 매력을 극대화시켜준 작품이다.

이정재는 상대적으로 깔끔한 인상이 강했다. 깔끔하게 빗어넘긴 올백 머리로 이마를 드러내 보는 이들의 눈을 시원하게 만들었고 핏이 살아있는 정장을 입거나 또는 편한 차림을 할 때도 잘 정리된 스타일을 고수했다. 정우성이 목 늘어난 셔츠에 구멍 뚫린 구제 청바지의 털털한 이미지라면, 이정재는 몸에 딱 맞아떨어지는 스판 소재 셔츠와 신상품 면바지가 잘 어울리는 댄디한 느낌이었다. 반면, 시선은 지켜보는 이를 단번에 압도할 정도로 강하다. 입가에는 적당히 장난기를 머금고 있어 또 다른 이미지로 금세 전환이 가능하다.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과묵하게 고현정의 뒤를 지키던 보디가드 재희를 연기하며 대사 몇 마디 없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것, 영화 '젊은 남자'의 속물근성 강한 청년 역을 소화하며 상반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건 이정재의 선천적 자산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잘생긴 얼굴이나 큰 키와 탄탄한 몸을 내세운다고 톱스타의 반열에 오를 순 없다. 정우성과 이정재의 경우 돋보이는 외모를 끊임없이 다듬으며 이를 바탕으로 자신들이 소화 가능한 캐릭터를 찾아갔다. 정우성은 액션연기를 주로 소화하며 그 속에 감정을 집어넣는 훈련을 지속했다. 그 과정에서 표정과 몸동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진했던 대사가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표현력이 풍부해지면서 멜로 장르에서도 관객을 쉽게 설득시킬 수 있는 배우가 됐다. 업계 관계자들로부터 '국내 최고의 액션배우'라는 수식어를 얻었고, 동시에 표정과 목소리로 성격을 드러내며 존재감 넘치는 배우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연출자로, 제작자로 영역을 넓히며 정우성이란 이름의 브랜드화 작업에 돌입했다.

이정재는 무게감 있는 진중한 인물과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코믹 캐릭터를 변주하며 연기 폭을 넓혔다. 가볍고 이기적인 인물부터 '관상'의 수양대군처럼 위압감을 주는 인물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출발 당시부터 안정된 연기 톤과 스타성을 인정받으며 주목받다 한동안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사업 등 연기 외적인 일에 신경을 쓰다 본업으로 돌아온 후부터는 줄곧 승승장구다.

최근에는 두 배우가 동반출연하는 작품에 대한 말이 나와 팬들을 설레게 만들고 있다. 캐스팅 물망에 오른 시나리오 '단동'이 표절 논란에 휩싸이면서 정우성과 이정재의 신작이 가시화될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지만, 여전히 두 사람은 '꼭 한번 같이 하자'며 열심히 동반출연작을 개발하고 또 찾아 헤매고 있다. 머지않아 정우성과 이정재가 주연으로 나선 영화를 만나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연예인마저 동경하는 배우들이니 티켓파워뿐 아니라 가치 측면에서도 주목받을 듯하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40대 정우성-이정재의 공동주연작이 60대가 된 두 사람의 새로운 이야기까지 기다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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