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불쾌한 원더랜드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 rland)는 출간된 지 150년이 지났지만, 아직 유쾌하고 신선하다. 말하는 토끼를 따라 토끼굴로 들어가는 첫 시작에서부터 눈물의 연못, 몸을 작아졌다 커지게 하는 음료수, 이상한 나라를 지배하는 붉은 여왕 등 어느 하나 상식적인 것이 없다. 이러한 작가의 상상력은 지난 150년 동안 이 작품을 최고의 동화로 손꼽게 하는 바탕이 됐다.

뜬금없는 동화 이야기는 현재의 우리나라가 마치 '원더랜드' 같아서다. 동화와 다른 점은 우리의 원더랜드는 굉장히 불쾌하고, 썩은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과거에 붙잡혀 나아가지 못하고, 돈과 권력이 관련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비상식적이다.

현재의 보편적인 상식은 다수가 아닌 개인에게 맞춰져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인 다수 뜻의 존중이나 생각의 다양성에 대한 배려는 사라지고, 대립만 격화한다. 그 잣대는 명확하다. 상식과 객관성, 합리성보다는 내 생각과 비슷하면 동지, 다르면 적이다. 정부의 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검찰이나 법원의 법적인 판단도 내 뜻과 맞으면 옳고, 다르면 그른 것이 됐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구조는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살면서 서로 손을 잡고 같은 길을 걸어가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사회를 내 편, 네 편으로 가른다. 이 피아(彼我)의 구분은 심지어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선택을 강요당한 '좌우'(左右)의 대립보다 더 심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이는 루이스 캐럴도 상상 못한 인터넷이라는 '집단 광기 표출의 장'이 대중화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이러한 극명한 전도(顚倒)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등장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과거의 대통령답지 않은' 그의 행보는 기득권층을 공황 상태로 몰고 갔다. 그래서 그들은 대통령을 쳐부숴야 할 '적'(敵)으로 간주했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 많았지만, 이승만 정권 때 친일세력만큼이나 단단한 결속력과 지난 세월 쌓은 권력, 돈을 가진 기득권층을 이기기는 역부족이었다.

정권이 바뀌고, 노 전 대통령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으면서 전세는 역전됐다. '확실한' 동지를 잃은 지지자들은 분노했다. 그들은 노 전 대통령의 선택을 '정치적 타살'로 보았다. 여기에다 광우병 파동, 용산 사태, 세월호 참사가 잇따라 터지면서 가뜩이나 미운 정부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할 명분도 만들어졌다. 이러한 적대적 관계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같은 당의 계보를 이어 당선한 박근혜 대통령까지 진행 중이다. 그 세월이 벌써 13년이다.

누구를 지지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경계해야 할 것은 이런 갈등이나 혼란을 원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박정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신줏단지로 모시면서, 나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은 모두 적으로 생각하도록 부추기고, 비상식을 상식으로 받아들이도록 획책한다. 그러나 '조자룡 헌 칼 쓰듯'하는 전직 대통령은 그들이 가진 한 패일 뿐이다. 필요성이 사라지면 언제든지 버린다는 뜻이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분명하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소수 집단의 이익과 특권이다. 권력을 누리거나 빌붙어 이를 적당히 누리고, 경제적 반사이익을 꾀해 현재 자리에 들러붙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반대편은 다 쫓아내고 자기편만 모아 신임을 묻고, 누가 보아도 뻔한 공천 헤게모니 다툼을 마치 국민을 위한 것처럼 포장해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등의 비상식이 판을 치는 것이다. 이들에게 국민은 목적 달성을 위해 적당히 이용하는 도구일 뿐, 최소한의 체면이나 염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앨리스의 원더랜드는 잠에서 깨면 끝이 난다. 그러나 이 나라의 원더랜드 화(化)는 이런 소인배가 다 없어져도 다른 소인배가 채울 것이어서 현재의 소인배와 앞으로 그 자리에 앉을 후보 소인배를 제외한 대다수 국민이 힘을 모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향수(鄕愁) 버리기'가 되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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