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참여마당] 수필-본의 아니게 119를 타고

# 본의 아니게 119를 타고

우리 대성산악회는 매월 둘째 일요일 산행을 하고, 정회원은 60명으로 20여 년 긴 역사를 가진 한가족 같은 회원들이 있다. 온갖 풍상을 겪은 노숙한 60, 70대 회원들이다. 금년 8월 9일, 입추가 지났고 12일은 말복으로 가을의 문턱인데도 더위는 쉬 물러가지 않은 계절, 평소보다 적은 40여 명이 강원도 정선군 화암동굴로 향했다. 모노레일을 타고 동굴 입구에 들어서 안으로 들어가니 바깥은 여름인데, 안은 가을을 연상케 한다. 잘 시설된 동굴에는 당시 광부들의 고생과 땀냄새를 맡을 수 있는 흔적들이 곳곳에 있고, 계단으로 오르고 내리는 좁은 공간인데 걸어도 끝이 없는 머나먼 길이었다. 긴 시간을 해냈다는 자부심도 들고, 평소 건강관리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럭저럭 시간을 보내다 대구로 돌아오는 길, 그런데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평소 아주 건강하던 박 사장님은 70대 중반이지만 당당한 체구인데 이분이 아플 줄이야. 갑자기 통증을 호소하길래 체했나 싶어 바늘로 따고 비닐을 대는 등 조치했다. 하지만 아픔이 심해져 기사님이 '서안동'이란 큰 글자가 보이는 아래에 차를 세우고, 나무그늘 긴 의자에 눕혀 상태를 보니 당장 119가 필요한 상황이다. 기사님이 연락한 후 119가 도착하자 환자와 산악회 총무, 필자가 함께 구급차를 타고 안동으로 향했다. 버스는 대구로 보내고 안동병원에 도착, 응급처치를 하면서 CT 촬영도 해보니 결과는 동맥파열이란다.

대구 경대병원에 가야 된다고 해 저녁 8시 20분에 출발했다. 앰뷸런스를 우리들도 함께 타고 경대병원으로 가는데 의사 선생님은 환자 팔에 연결된 정면 모니터를 수시로 점검했다. 박 사장님의 가족에게도 곧 경대병원에 도착한다고 전화 연락을 했다. 50분 만인 9시 10분경 경대병원에 도착해보니 박 사장님의 부인과 아드님이 수심 가득한 얼굴로 와 있었다. 산악회 총무가 '안동서 25만여원 병원비를 계산했노라'고 말씀드리고 집에 돌아왔지만 걱정이 되어 수술이 잘 되기를 기원했다. 박 사장님은 수술 후에도 2주 정도 응급실에 누워 있었으니 가족들의 피 말리는 전쟁이 바로 이런 상황이었을 것이다. 30여 분 면회시간에도 대화 한마디 할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일반 병실에 있던 며칠도 병문안을 갈 수 없는 상황이라, 입원 3주 만에 퇴원 후 뒤늦게 회원 몇 명이 자택으로 찾아갔다. 박 사장님의 겉모습은 건강하게 보였고 목이 쉬어 오래 대화할 수 없었지만, 죽을 먹으며 서서히 건강이 회복되는 단계였다. 사모님은 이제 마음을 놓을 수 있겠다며 버스 기사님, 안동병원 의료진, 경대병원 의료진 등 모든 분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달라고 말씀하셨다.

지난 8월 대구 염매시장 화재 때 소방차의 원활한 진입을 위해서 차량 통제를 해 인명과 재산 피해를 줄이게 한 장한 시민 5명에게 중부소방서장이 감사패를 증정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우리가 탔던 구급차가 안동에서 경대병원까지 오는 길에 어둠 속이지만 일사불란하게 차들이 길을 틔워주는 모습을 보면서 '참 살 만한 세상이구나, 밝은 사회는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만들어 가는 거구나' 하는 사실을 느꼈다.

윤육한(대구 수성구 달구벌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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