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구화지문(口禍之門)

가을이 깊어가는 시월입니다. 들녘마다 노랗게 익은 벼 이삭이 황금 물결처럼 아름답습니다. 높은 산 정상으로부터 곱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은 이내 산 전체를 물들여 우리들의 마음까지 아름답게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는 항상 서로의 생각을 표현하는 말이 존재합니다. 뛰어다니는 '말'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말'입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다음에야 우리는 말을 하며 살아갑니다. 가족과 친구, 직장 선'후배 등 친한 사람은 물론 비즈니스를 위해 처음 보는 이들과도 말을 합니다, 말을 할 줄 모르는 갓난아이와 청각장애우를 빼면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나의 생각을 행동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말로써 전달하는 것이 우선이지요.

우리의 일상을 가만히 돌이켜보면 필요한 말보다는 쓸데없는 말을 더 많이 하고 살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 않아도 될 부연 설명을 한다거나 본인의 생각과 달리 전달돼 곤욕을 치른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것입니다. 남의 생각을 내 생각처럼 말하는 사람, 직접 본 것도 아니면서 본 것처럼 말하는 사람. 시기하는 마음으로 연관도 없는 사람을 흉보고 헐뜯는 사람, 화난다고 해 욕설을 함부로 내뱉는 사람, 그냥 두면 화해될 것을 괜히 나서서 서로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 생각이 같지 않다 하여 상대를 비방하는 사람 등등.

이처럼 말은 자신은 물론 상대방의 마음도 다치게 하고 서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말은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유독 말에 대한 격언이나 속담이 많은 것도 말이 삶 전체이기 때문입니다. 말에 대한 경계를 이르는 격언은 어느 나라에도 있습니다. '악은 바늘처럼 들어와 참나무처럼 퍼진다'(에티오피아 속담),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모로코 속담),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다'(성경 잠언), '입과 혀라는 것은 화와 근심의 문이요, 몸을 죽이는 도끼와 같다'(명심보감). 이처럼 온 인류는 말에 대해 경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가에는 여름과 겨울에 하안거, 동안거라는 것이 있습니다. 선방 수행을 하는 스님네들이 여름과 겨울에 100일 동안 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선방에서 참선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결제 100일 동안 묵언 수행을 하는 스님도 있습니다. 왜 묵언을 하냐고요? 쉽게 말하면 묵언을 통해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내면 속에 있는 참 나 자신과 만나는 연습이라고 할 수 있지요. 참선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차담과 포행을 하며 도반들과 담소를 나눌 수 있지만 묵언을 하게 되면 누구도 그 스님에게 말을 건넬 수 없으며 꼭 전해야 할 말이 있으면 메모를 통해 전달하게 됩니다. 활달하던 스님도 100일 묵언 수행을 하고 나면 조용하고 차분하게 되어 다른 이들의 말을 신중하게 경청하며 자신의 말을 아끼게 됩니다.

'가는 말이 도와야 오는 말도 곱다'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속담입니다. 가는 말이 고우려면 13세기 무렵 아시아, 중동은 물론 유럽 대륙까지 점령했던 칭기즈칸이 "나는 이름도 쓸 줄 모르는 문맹이었지만 남의 말과 의견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고 지혜로워지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한 것처럼 남의 말을 잘 경청해 스스로의 말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국화와 단풍축제가 긴 여름날 지쳤던 우리의 마음을 노랗고 붉게 물들여 설레게 합니다. 말도 아름다운 꽃처럼 그 색깔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단풍처럼 아름다운 말로 우리 삶을 아름답게 물들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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