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직(促織, 귀뚜라미)-두보
너무나도 작고 가냘픈 귀뚜라미
그 소리 어찌 이리 애간장 다 태울까
풀뿌리에서 우는 소리 불안에 떠는 듯하더니
상 아래서는 정이라도 나누듯 속삭여대네
떠돌이 나그네 눈물 안 흘리곤 못 배기고
버림받은 아내 차마 새벽까지 못 듣겠네
그 애절한 거문고나 그 격렬한 피리 소리도
천진한 귀뚜라미 소리, 그 감동보단 못해
促織甚微細(촉직심미세) 哀音何動人(애음하동인)
草根吟不穩(초근음불온) 牀下意相親(상하의상친)
久客得無淚(구객득무루) 故妻難及晨(고처난급신)
悲絲與急管(비사여급관) 感激異天眞(감격이천진)
개와 귀뚜라미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물론 개가 이긴다고? 천만에, 귀뚜라미가 개를 이긴다. 환한 달밤에 귀뚜라미들이 귀뚤귀뚤 노래를 부르는데, 심술궂은 개 한 마리가 '좀 조용히 하라'면서 컹컹 짖는다. 온 동네 개들이 덩달아 다 들고 일어나서 한바탕 컹컹 짖고 나자 마을이 쥐 죽은 듯 고요하기만 한데, 바로 그 고요 속에서 귀뚜라미들이 다시 노래를 시작한다, 귀뚤귀뚤귀뚤귀뚤귀뚤귀뚤귀뚤귀뚤…. 화가 난 개떼들이 다시 험상궂게 컹컹 짖어대면, 이번에는 귀뚜라미들도 개떼들과 한바탕 맞장을 뜬다. 컹컹 귀뚤귀뚤, 컹컹 귀뚤귀뚤, 컹컹 귀뚤귀뚤, 컹컹 귀뚤귀뚤…. 개와 귀뚜라미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물론 귀뚜라미가 이긴다, 개를!
인용한 시는 너무나도 작고 가냘프면서도 끊임없는 울음으로 마침내 사나운 개를 이기는 귀뚜라미 소리를 시적 구도 속에 포착한 작품이다. 무언가 불안에 떨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귀에다 대고 다정하게 속삭이는 것 같기도 한 귀뚜라미 소리, 그것이 울음인지 노래인지조차도 아리송하다. 그런데 시인은 그것을 노래라고 하네. 나그네의 눈물을 펑펑 쏟아지게 하고 버림받은 아내의 창자를 쥐어짜는 노래, 그 어떤 인위적인 악기로도 흉내 낼 수 없는 천진하고도 감동적인 노래라고 말하네, 시인은.
'귀뚜라미는 나에게 가을밤을 읽어주는데/ 나는 귀뚜라미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 언제 한 번 귀뚜라미를 초대하여/ 발 뻗고 눕게 하고/ 귀뚜라미를 찬미한 시인들의 시를/ 읽어주고 싶다….' 박형권 시인의 시 '우물'의 일부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동안 귀뚜라미 음악회에 참석하여 공짜로 노래를 들었을 뿐, 그에게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귀뚜라미를 정식으로 초대하여 강낭콩이 섞인 쌀밥 한 번 대접해야겠네. 식사가 끝난 뒤엔 '발 뻗고 눕게 하고/ 귀뚜라미를 찬미한 시인들의 시를' 밤새도록 읽어줘야 되겠네. 두보의 시에서 박형권의 시에 이르기까지.
이종문 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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