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복비(福費)

이태준의 단편소설 '복덕방'은 세태변화에서 낙오한 노인들의 좌절과 비애를 그리고 있다. 이렇다 할 생활 기반도 없이 주로 복덕방에서 소일하는 세 노인의 갈등과 몰락을 통해 소외된 사람들의 절망과 가족사의 애환을 전한다. 놀라운 것은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에 벌써 부동산 투기 문제를 주요 소재로 다뤘다는 것이다.

복덕방이란 토지나 건물 등 부동산의 매매'임대차 등을 위한 중개나 대리 사무를 해주는 곳으로 오늘날의 부동산중개사무소를 일컫는 말이다. 복덕방의 기원은 고려시대 이후의 객주(客主)와 거간(居間)에서 비롯했다. 타인 간의 거래를 알선하고 성립시키는 객주와 거간 중에서도 조선 중기부터 본격 등장한 가거간(家居間)과 가쾌(家儈) 등의 업무공간이 복덕방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부동산중개업자라 할 만한 가쾌들이 모여 사무실을 차린 것이 바로 '복덕방'이었던 것이다. 초기 복덕방은 소설 속의 이야기처럼 주로 나이 지긋한 사람들의 동네 사랑방 역할도 했으며, 손님이 찾아오면 매매 흥정을 붙여주고 그 대가로 약간의 구전(口錢)을 받았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 고도성장의 여파로 복덕방에도 변화의 물결이 출렁거렸다.

이른바 '복부인'이 활개를 치고 부동산 투기 붐이 사회문제로 등장한 것이다. 부동산 중개업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부동산중개업법'을 제정하고, 공인중개사의 자격제와 중개업 허가제를 도입한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 들어 공인중개사도 합격률이 20~30%에 불과한 시험을 통과해야 개업할 수 있는 인기 직종이 되었다.

예로부터 땅과 터를 중요시했던 우리 선조들은 집을 사고파는 중개 행위를 '생기복덕'(生起福德)이라고 했다. 그래서 토지와 주택을 중개하는 곳이 복덕방(福德房)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사하는 새집과 더불어 집안에 복을 달라는 뜻에서 중개 수수료도 복비(福費)라 하여 가능한 한 후하게 쳐주려고 했던 것이다. 이 수수료 부담을 덜거나 줄이려고 온라인이나 앱을 이용한 부동산 직거래에 나섰다가 보증금 사기 또는 이중계약의 표적이 되거나 개인정보 노출로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소식이다. 옛 사람들이 중개수수료를 두고 공연히 '복비'라고 부른 게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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