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구와 비(非)수성구 지역의 학력 격차를 해소하는 것은 대구 교육계가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제다. 특히 수성구에 자리한 고교와 나머지 지역 고교 간 학력 격차가 문제다. 이 격차가 예전보다 줄었다는 말도 나오지만 여전히 자녀의 고교 진학 문제 때문에 수성구로 이사하는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또 이 같은 현상이 지역 균형 발전에 걸림돌이라는 지적도 많다. 최근 대구시교육청이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초청해 진행한 '교육 정책 간담회'에서도 이 문제는 가장 큰 화두였다.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분석해 수성구와 비수성구 간 학력 격차가 얼마나 나는지, 그 격차를 줄일 방법은 없는지 살펴봤다.
◆학력 격차의 벽, 여전히 높다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둔 A(42'대구시 동구) 씨는 내년 초 수성구로 이사하면서 딸도 그쪽 학교로 전학시킬 작정이다. 딸을 '좋은 대학'에 보내려면 아무래도 교육 여건이 좋은 수성구 중'고교를 택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다.
"주위에선 자녀 교육에 욕심이 있을 경우 다들 빨리 이사하라고 합니다. 학부모가 이 현상에 휘둘려선 안 된다고 지적하던 교사들도 자기 아이 얘기라면 말이 달라져요. 중학교 교사인 친구도 인근에 살다 지난해 수성구로 이사를 갔어요. 당연히 그이 아들도 수성구 쪽 중학교로 옮겼죠."
북구 칠곡에 사는 B(45) 씨는 자녀 교육을 위해선 수성구로 이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첫째 아이를 올해 집 근처 고교에 보냈는데 교육의 질에 실망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초교 6학년인 둘째 아이는 수성구에서 상급 학교에 다니게 할 마음을 굳혔다.
"남구나 서구뿐이 아닙니다. 이 지역 고교들도 하향 평준화돼 기대할 게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속이 터지는데 교사들은 답답하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이곳에선 열심히 하는 교사가 별로 없어요. 진학지도에 밝은 교사도 보기 어렵고요. 작은아이만큼은 이곳에서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최근 들어 대구, 특히 수성구 교육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시모집에서 수시모집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는 등 변화하는 대학 입시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부산, 인천 등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나 통하는 이야기다. 대구 내에서는 여전히 수성구와 비수성구 간 학력 격차가 작지 않다.
수능시험 성적을 비교하면 수성구와 비수성구의 학력 격차가 여실히 드러난다. '2015학년도 수능시험 분석 자료'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윤재옥(새누리당) 의원실로부터 받은 것이다.
이 자료를 매일신문 교육문화센터가 분석, 수능시험 표준점수 평균(특목고, 자사고, 특성화고 제외)을 따졌을 때 상위 20위에 든 일반고는 전 영역에 걸쳐 수성구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동구와 서구는 전 영역에서 20위 내에 이름을 올린 고교가 하나도 없었다.(표 참조)
비수성구 지역이 수능시험으로 대표되는 학력이 다소 떨어지는 대신 수시모집 대비 체제를 잘 갖췄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윤재옥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2015학년도 서울대 수시모집 합격자 수(등록 기준)를 살펴보면 대구 고교의 수시모집 합격자 수는 총 112명인데, 이 중 수성구 고교의 합격자 수가 절반을 넘는 60명에 이르렀다.
◆학력 격차, 해소할 방법은 없나
최근 학력의 수성구 쏠림 현상을 완화할 방법으로 자주 거론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단일 학군제 도입이다. 현재 대구 경우 고교 배정을 위해 1학군(중구, 동구, 북구, 수성구, 달성군 가창면)과 2학군(서구, 남구, 달서구, 가창면을 제외한 달성군)으로 나누고 있는데 학군 경계를 아예 허물어버리자는 것이다. 지역 시의원, 국회의원 가운데서도 이를 언급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 역시 적지 않다. 비수성구 지역에 살면서 수성구 고교에 자녀를 보낼 수 있다는 게 사실 학력 격차 해소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한 교육계 인사는 "이 제도는 수성구 쪽으로 이사를 하지 않아도 수성구 고교에 진학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말일 뿐"이라며 "근본적으로 수성구 외 지역 고교의 학력을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결여된 주장이다"고 했다.
이보다는 진학 격차를 줄이면 자연스레 학력 격차가 좁혀질 수 있다는 주장이 관심을 끈다. 비수성구 고교들이 학력만으론 수성구 고교와 경쟁하긴 쉽지 않으니 수시모집 준비 등 진학지도를 잘해 같은 성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한다면 굳이 수성구 고교로 눈을 돌릴 이유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달서구의 한 고교교사는 "비수성구 고교들이 수능시험 위주인 정시모집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라며 "수시모집 학생부 종합전형에 대비해 학술 동아리 활동, 교과와 연계한 독서 활동, 희망 전공에 맞춘 특강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진학 실적을 높이는 데 힘쓴다면 우수한 학생들을 끌어들일 수 있게 되고 장기적으론 학력 격차도 좁혀질 것"이라고 했다.
자율형 공립고를 '제대로'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자공고는 공립 일반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정한 학교 유형. 대구의 자율형 공립고는 13개교인데 수성고 외에는 모두 비수성구 지역 고교다. 한 고교 교사는 "자공고를 대상으로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재정 지원을 강화한 것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 학교의 특색을 드러내면서 경쟁력을 높이려는 취지였다"며 "솔직히 일부 자공고를 제외하면 그 취지에 걸맞게 변화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교사가 변하는 게 먼저라는 반성도 나왔다. 수업'교재 연구 미비, 변화하는 대학입시에 대한 학습 부진, 학생에 대한 관심 부족 등 고쳐야 할 점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북구 한 교사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열의가 부족한 교사들이 적지 않은데 이들은 꼭 '학생 수준이 문제' 또는 '주변 환경이 문제'여서 학력, 진학 실적이 떨어진다는 등 핑곗거리부터 찾는다"고 지적했다.
지자체가 학교 교육 지원센터를 설치, 운영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경제적 수준, 주변 교육 환경 등을 고려하면 학교의 힘만으로는 학력 격차를 좁히기 쉽지 않기 때문에 지자체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매일신문 교육문화센터 김기영 연구실장은 "지자체가 학교 교육 지원센터를 구축, 이곳에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해당 지역 학교는 부족한 교육 인프라를 극복할 힘이 생기고 경쟁력도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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