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미화 칼럼] 교과서는 정체성이다

건국 아닌 정부 수립이라는 교과서

대한민국 정체성 부정하는 것 같아

통합교과서 제작은 꼭 중도 지켜야

지난 8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때 보인 20, 30대 청년들의 반응은 예외적이었다. 전쟁도 불사한다는 결기가 표출되었다. 평화를 지키려면 전쟁을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각오를 보여주었고, 제대를 앞둔 군인들은 전역을 미루면서까지 나라를 지키겠다고 나섰다. 나라를 지키는 데 그보다 더한 백은 없다.

전쟁이 터져서 서로 총을 겨누는 상황도 아닌 남북 대치 상태에서 서로 정상적인 방법으로 경계를 서면 되는데 수시로 도지는 도발병을 참지 못한 북한이 목함지뢰를 몰래 심어 남측 군인들의 꽃다운 발목을 날렸으니 참기 어려운 분노를 느낀 것이다. 선진국이 되면 될수록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나라가 부를 때 주저하지 않고 전장에 나아가는데 바로 그런 기류가 우리나라에 형성됐다.

목함지뢰 도발 사건 때 대응 자세는 2010년 천안함 폭침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당시 온라인 공간은 북측 기습 공격의 결정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정부 조작설이 난무했다. 당시 수병으로 근무하던 동서대 학생 한 명도 전사한 것을 알게 됐지만 그 사건에 대해서 분노를 느끼는 학생은 거의 없는 것을 본 같은 대학 마이어스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이런 글을 기고했다.

미군 장갑차에 치여 죽은 미선·효순 양 사건 때는 수만 명의 촛불시위대가 미국을 성토하며 밤을 밝히더니, 정작 북한의 기습 공격으로 46명의 대한민국 군인이 수장된 천안함 폭침에 대해서 전혀 분노하지 않은 것을 '국가 이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였다.

2002년 미선·효순 양 사건 당시 미국 내 기류는 좀 심각했다. 필자는 당시 미국 내 5개 도시의 정치·경제·언론·비정부기구 등에서 '지역 혁신'(regional innovation) 현장을 찾아다니고 있었는데 현지 CNN은 시위대가 던진 돌에 머리를 맞아서 피를 흘리는 주한 미군 사령관의 모습을 24시간 내보내고 있었다.

천안함 사건 때도, 미선·효순 양 사건 때도 우리 젊은이들은 정확한 정보와 과학적 판단보다는 감성 내지는 음모론에 쉽게 휩쓸리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다행스럽게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사건은 교과서에서 배우기 힘든 북한의 실상을 피부로 느끼도록 만들어 단단한 안보관으로 연결시켜 주었다. 말하자면 북한이 엑스맨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나라의 기본이 강해지고, 국가 정체성이 분명해지려면 다수 국민이 공유하는 역사를 가져야 한다. 역사학계가 좀 붉든 푸르든 그건 별개의 문제다. 학생들은 특정 이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온전한 국사를 배울 권리와 의무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총회가 결의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이다. '대한민국 역사'를 쓴 이영훈 서울대교수는 1948년 정부 수립은 건국 또는 독립과 동어반복으로 쓰였지 별개의 뜻이 아니었다고 한다.

교과서 통합화를 두고 여야 간 정쟁이 뜨겁다. 특정 세력의 역사 끌어당기기는 반드시 경계해야 하지만, 심각한 좌편향을 그냥 두어서도 안 된다. 바로잡아야 한다. 정리가 끝나지 않은 최근 세사를 구태여 고교 국사 교과서에 넣을 필요는 없다. 학생들을 정쟁에 끌어들일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제는 담담한 마음으로, 대한민국을 세운 기본 이념이 무엇인지,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선진국 문턱에까지 도달한 우리의 저력은 무엇인지, 학생들에게 제대로 가르쳐 뼈대를 똑바로 세워야 한다.

향후 역사학계를 비롯한 통합 국사 교과서 집필자들은 정치적 이해타산을 씻고, 중도를 생각하는 윤집궐중(允執厥中)의 정신을 잃지 말아야 나라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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