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군의 10월 첫 주말은 100대의 피아노 선율에 젖었다. 막 시작된 가을의 정취와 낙동강의 사문진 낙조까지 더해 모두 익어가는 계절의 흡족을 즐겼다. 달성군이 개청 100년을 맞아 지난 2012년부터 시작된 '100대 피아노 콘서트'는 올해로 네 번째. 해마다 서울'부산은 물론 광주와 전주에서도 관객들이 찾아오니 코끝이 찡할 따름이다.
준비도 착실히 했다. 올해는 700면을 더 확보해 1천200대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사실 야외공연에서 이만한 주차시설이 확보된 국내 축제장은 없다. 관계 공무원들의 노고에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왜 이렇게 관객들이 많이 몰리는 것일까. 아마도 역사성과 장소성 때문일 게다. 낙동강의 사문진 나루터는 우리나라에서 피아노가 첫 유입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때가 1900년. 피아노는 우리나라에 도입된 신문물의 대표격이며 문명의 척도다. 대구가 문화와 교육의 도시답게 성장한 배경에도 이런 서양 신문물의 주장격인 피아노가 처음으로 사문진 나루를 통해 들여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달성군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음악문헌학자인 손태룡 교수의 엄격한 고증을 거쳐 풍류 피아니스트 임동창과 함께 100대의 피아노 콘서트가 탄생된 것이다. 유사한 축제가 너무 많다는 지적 속에 '100대 피아노 콘서트'만은 축제 중의 축제로 평가받으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100대 피아노와 함께 올해의 최고 화제는 단연 세계 최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소리꾼 장사익. 정경화는 불멸의 바이올린 협주곡 막스 부르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을 조재혁의 피아노 반주로 연주해 관객들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100대의 피아노'를 배경으로 마치 신들린 듯한 연주는 최고였다. 소리며 동작이며 얼굴의 감정 변화. 관중은 마치 주상절리 같은 모양새로 열중했다. 40여 분의 연주가 끝나자 환호와 앙코르가 터져 나오고 공연장은 완전히 흥분과 감동의 도가니였다. 정경화는 연주가 끝나고 생애 첫 대규모 야외 공연의 흥분을 "결코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연주회였다"며 환하게 웃었다.
정경화는 달성군과도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세계적 명문 줄리아드에서 바이올린 공부에 열중할 때, 지금은 고인이 된 어머니 이원숙 여사가 옥포에서 양송이 버섯공장을 경영해 전량 수출했다. 50여 년 전의 일이다. 방학이면 훗날의 정트리오가 어머니와 함께 옥포에 내려와 한동안 지낸 것을 정경화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첼리스트 정명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지휘자요 피아니스트인 정명훈 삼 남매와의 이런 인연으로 100대 피아노와 함께 정트리오의 협연이 이뤄질 날도 머지않을 것으로 많은 관객들은 기대하고 있다. 연주 후의 담소 자리에서 정경화는 매우 긍정적인 표정을 지으며 노력을 해보겠다고 약속했다. 이만하면 절반은 이미 성사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튿날의 소리꾼 장사익 무대도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애절하면서도 회한과 간절한 미래의 소망들이 섞여 묘한 감정들을 회오리치게 만든 그의 목소리. 임동창의 피아노 반주에 실려 낙동강 강바람과 엎치면서 관객들의 가슴을 헤집었다.
평소 100대 피아노 콘서트에 많은 관심을 가진 권영진 대구시장은 연주회 마지막 날 밤늦게 해외출장에서 돌아와 아쉬움을 표명했다는 전언이고, 대신 김연창 대구시 경제부시장이 참석했다. 모든 연주가 끝나고 대부분 관객이 내년을 기약하며 자리를 떴지만, 감격에 벅차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일부 관객들은 빈 의자를 매만지며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이때 한 관객이 얼굴을 알아보고는 "군수님, 저는 100대 피아노 콘서트 때문에 너무 행복합니다"라며 소매 끝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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