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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국가가 해야 할 일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발표하였다. 쉽게 말해 국가가 직접 교과서를 만든다는 것이다. 종북사관, 친일사관, 긍정사관, 자학사관 등 역사교과서를 둘러싸고 지금까지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그리고 국정교과서 채택과 관련해 그 의견 대립 또한 팽팽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지금의 검인정제도를 폐기하고 국정교과서 체제로 바꾸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유 중 핵심은 지금의 역사교과서들이 편향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 이유의 결과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나온 것은 너무 의아한 일이다. 하나의 역사교과서에 다양한 사관을 모두 넣을 수 없기 때문인데, 이것이 외려 편향되기 쉬운 것 아닌가. 유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남긴 말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역사적 사실에 있어서 역사가에 따른 다양한 해석과 역사관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설령 어떤 역사관이 다른 누군가의 입장에서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분서갱유를 당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생각이 존재하는 만큼 그 시비를 가리기 위해선 구성원들의 토론과 논쟁이 필요한 법이지, 국가의 통제가 필요하진 않다.

국가가 국민들에게 하나의 생각을 가지게 만들고자 하는 건 늘 바람직하지 않다. 독일의 나치당 시절 히틀러의 오른팔이자 선전장관이었던 괴벨스는 라디오와 TV 등 미디어를 통해 독일 국민들에게 체제의 우월성을 전파함과 동시에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심어주었다. 그 결과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독일 국민들은 패전을 앞두고도 승리를 확신하게 되었다. 그 최악의 상황에서도 독일 국민들에게 나치당은 여전히 절대적인 선(善)이자 믿음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만큼 괴벨스가 활용한 미디어는 대중을 지배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엄청난 힘을 가진 것이었다.

교과서 역시 활자 미디어로서, 전국 수백만의 학생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면, 권력을 가진 자의 입장에서 그것은 얼마나 탐스러운 열매일까. 하지만 국가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비롯해 문화와 정치 등 여러 영역에서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을 해쳐서는 안 된다. 혹여 다음에 지금의 사상과 입장이 다른 체제의 국가가 들어섰을 때, 또다시 그 입맛에 따라 교과서를 바꾸고,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를 틀어막고, 다른 사상을 핍박한다면 그 또한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국가는 절대적인 선이 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생각이 존재하는 다원화된 사회이다. 이를 하나로 통일시키려 할 때 나치당의 그것처럼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다양한 생각과 의견들을 인정하고, 그것들이 소통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열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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