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의 표지 석물인 망주석에는 의례히 돋을새김한 묘한 형상의 조각물이 보인다. 언뜻 용의 모습인가 하면 거북인지 호랑이, 다람쥐인지 식별이 어렵다. 특정 동물이 아니라 상상의 동물이라는데 그 형상이야 어떻든 명칭만은 분명히 '세호'(細虎)다. 가늘게 새긴 작은 범이라는 뜻이다.
볕 좋은 지난 주말 가까운 달성 도동서원에 나들이를 했다. 서원 입구의 400년 넘은 은행나무가 큰 볼거리라면 중정당(中正堂) 기단에 새긴 다람쥐 모양의 세호는 도동서원의 숨은 볼거리다. 특이한 것은 한훤당 김굉필과 한강 정구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 바로 앞에 있는 강당 기단에 세호를 새긴 점이다. 연유를 알 수 없으나 그 쓰임새가 음택'양택의 풍수 관점에서 해태상과 같은 역할을 추측해볼 수 있다.
조선 초기 왕릉의 석물에 새겨진 세호는 동물 형태가 아니었다. 배가 오목한 실타래 모양에 가운데에는 구멍이 나 있다. '국조오례의'에도 '耳'(귀)라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점차 장식화되면서 동물 형상의 조각으로 굳어졌다. 세호라는 이름을 얻은 것도 영조 때 간행한 '국조상례보편'에 나오는 기록이 처음이다.
문제는 봉분 좌우 망주석에 새긴 세호의 머리 방향이다. 한쪽 머리가 위로 올라가는 모양이면 맞은편 세호는 아래로 향한다. 풍수 전문가들이 세호의 형상이 아니라 방향성에 따른 그 쓰임새를 더 주목하는 이유다. 풍수상 세호는 액과 잡귀를 막거나 음양 조화의 장치물로 해석하면 큰 잘못이 없다.
세호는 본래 좌상(左上'東上) 우하(右下'西下) 구조다. 숙종 이전까지 모든 왕릉은 왼편 세호의 머리가 위를 향하고, 오른편 세호는 아래로 보는 형태다. 그런데 숙종의 두 왕비릉에는 좌상우상이 있고, 장희빈의 묘는 아예 세호가 뭉개져 있다. 몇몇 반가나 불가의 부도도 좌상우상, 좌하우상 등 제각각이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제각각 다른 의미와 역할을 덧붙이는 바람에 법식이 달라진 게 아닌가 싶다.
정부가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발표했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새 교과서는 오류와 편향을 넘어 헌법 정신과 객관적 사실에 맞게 서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역사 해석과 시각의 다양성을 해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야당은 급기야 국회에 장관 해임건의안까지 냈다. 이념과 가치관의 차이에서 빚어진 한국사 교과서 논란이 꼭 세호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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