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민에게 책임과 봉사를 다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희생하겠다는 커다란 뜻을 품고 올해 8월 대구 남부경찰서 서대명파출소에 발령 받은 신임 순경이다. 서대명파출소는 공기 좋은 앞산과 대구의 자랑인 카페 거리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분위기 있고 아름다운 야경, 앞산의 좋은 기운, 맑은 공기를 동시에 느끼며 일할 수 있어 좋다.
길고 긴 수험생 시절, 종일 책과 씨름 후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지금 내가 발령받은 파출소 앞을 지나칠 때면 늘 멍하니 서서 '내가 과연 저 파출소에서 근무할 날이 오기나 할까?' 생각하며 한참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지나갔었는데 그 파출소에 발령을 받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아 얼떨떨하기만 하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채용시험에 합격했기에 누구보다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첫 출근이 다가오면 올수록 그 자신감은 점점 두려움과 걱정으로 바뀌어 갔다. 과격한 주취자에 폭력현장 그리고 교통위반 단속현장에서조차 위반 사실을 발뺌하며 욕설이 오가는 일선에서는 여경을 크게 반기지 않는 분위기라고 들어서였다. 하지만 이대로 의기소침해 있을 순 없었다. 분명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그 작은 부분에서부터 열심히 해서 인정받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렇게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된 첫 출근. 인간미 넘치고 하나의 팀원으로 느낄 수 있게 진심으로 대해주시는 좋은 팀을 만나 매일 매일 따뜻함을 느끼며 근무해 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지난 6일 오전 2시 30분쯤, 김 경사님과 함께 순찰차로 순찰을 돌고 있던 중, 상황실에서 "고깃집 앞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맞고 있다"는 다급한 지령이 내려졌다. 직감적으로 가정폭력이란 느낌이 들었다. 현장에 가는 짧은 시간 동안 내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무엇을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한 팀원으로의 몫을 다 해내야 한다. 잘 처리해내자'고 마음속으로 되뇌며 현장에 도착하니 여자는 맞았는지 넘어져 있었고 남자는 말리는 경찰관을 뿌리치며 여자에게 달려들려고 날뛰고 있었다. 그 옆에 5살쯤으로 보이는 딸이 울 법도 한데 멍하니 지켜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많이 안쓰러웠다. 먼저 도착한 경위님들이 가정폭력 건으로 현장에서 즉시 체포하였고 피의자인 남편을 순찰차 뒷좌석에 태워 파출소로 향했다. 피의자는 체포된 게 분했던지 순찰차 창문과 플라스틱 방어막을 발로 계속 차고 머리로 박고 김 경사님과 나를 향해 '너희 둘 죽여 버리겠다!'며 격하게 날뛰고 있었다.
머릿속엔 '파출소에 도착해서 저 피의자를 어떻게 제압하여 소내까지 데리고 들어가지?' 머릿속엔 그 생각뿐이었다. 아마 김 경사님도 같은 생각이셨을 것이다. 그렇게 파출소에 도착했고 뒷문을 열어 피의자를 겨우 내려 소내로 들어가는 그 찰나, 피의자는 손 쓸 겨를도 없이 김 경사님의 얼굴을 향해 머리를 들이받았다. 김 경사님은 들이받을 수도 있단 걸 예상하셨는지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피하셨다. 코뼈가 부러지거나 이가 다 부러질 수 있는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다. 말로만 듣던 것을 내 눈앞에서 처음 보니 그저 얼떨떨하고 경사님이 존경스러웠다.
"정 순경. 우리 일은 예측불능의 순간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예상하며 현장에 나가야 해. 그리고 몸조심해야 해."
김 경사님이 수년간의 경험을 통해 얻으신 노하우와 팁을 나지막히 말해주었다. 그리고 3주 전쯤 있었던 일이다. 소음 관련 신고접수를 받고 현장조치를 하던 그 순간이었다. 저 멀리서 30대의 한 여성이 머리는 산발에, 거의 맨발 차림으로 온 동네가 떠나가라 울부짖으며 누군가를 애타게 찾으며 내가 있는 쪽으로 뛰어왔다.
"제 아들 보셨어요? 제 아들 보셨어요?"
아들을 잃어버린 듯했다.
"어디서 잃어 버렸어요? 몇 살이에요? 어떤 옷 입고 나갔어요?"
하지만 아기 엄마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계속 울부짖기만 했다. 극도로 불안정하고 흥분한 상태였기에 일단 안정부터 시킨 후 재차 물어봤다.
"어머니. 안정하시고 어디서 잃어 버렸는지 차분히 말씀하세요. 제가 꼭 찾아 드릴게요."
그랬더니 빌라 끝 저 앞 골목 사거리라고 하셨다. 그 즉시 인상착의를 물으며 그쪽으로 뛰어갔다. 그 순간이었다. 저 앞에서 가족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그 아기를 안고 웃으며 나오는 것이었다. 아기 엄마는 더 크게 울부짖으며 아기에게 달려갔고 아기를 안고 한동안 말을 못 이으셨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내게 펑펑 울면서 감사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이셨다. '나는 안정시켜서 인상착의를 물어본 것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에게는 위안을 줄 수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피해자나 피의자를 대면할 때 말할 수 있는 출발점을 찾아 주는 것, 마음과 마음의 통로가 되어 주어 안정을 시켜 말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대한민국 경찰관으로 정식 발령 받은 지 한 달 반. 여느 때처럼 파출소로 출근하는 길에 가을 햇살이 참 따뜻해 잠깐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너무도 따뜻한 한 줄기의 햇빛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앞으로 경찰관으로서 살아가는 긴 시간 동안 힘들고 지치더라도 초심을 생각하며, 국민들이 밝고 희망차고 올바른 길을 가는데 저 밝은 햇빛처럼 한 줄기의 빛이 되어주라는 메시지를 주는 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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