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동일의 새論 새評] TPP, 경제 문제로만 보지 말자

美의 협정 추진 목적은 중국 견제용

경제보다 외교·안보 동맹 틀로 인식

'기회놓쳤다'는 지금이 전략 수립 적기

가입 원하는 국가와 공동보조 취해야

2013년 한 해 동안 연구년으로 미국 시라큐스 대학에 체류할 기회가 있었다. 낮에 학교에 있는 경우 학내 세미나나 토론회 등에 자주 참석하였다. 대개 점심시간에 열리기 때문에 제공되는 샌드위치 등으로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게 주된(?) 유인이었다. 물론 더 큰 소득은 다양한 국제적 이슈에 대한 수준 높은 발표와 토론을 공짜로 즐긴 것이다. 일개 대학의 한 학과 혹은 연구소에서 개최하는 모임에 명망 있는 연사나 발표자가 등장하는 데 대해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다.

총기 규제나 선거제도 등 미국 국내 이슈들도 토론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하지만 주된 관심사는 국제 문제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빈도가 높은 것은 중동 정세였고, 결국은 이스라엘과의 관련성이 중동 문제의 핵심임을 알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아시아는 2차적 관심지역이었다. 아시아에서도 관심이 집중된 곳은 역시 중국이었다. 중국에 대한 관심도는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아시아 회귀정책(Pivot to Asia)을 적극 추진하면서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시점에 접한 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관한 세미나였다.

당시는 국내에서 큰 이슈가 되지 않을 때여서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누구도 TPP를 단순 경제 문제로 접근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협정의 경제적 효과나 고용 창출, 미국의 GDP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 등 흔히 우리가 관심 두는 부분을 언급한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주된 관심은 중국이었다. 아시아에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미국의 국익을 지키는 데 TPP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주된 기조였다. TPP 추진의 궁극적 목적이 중국 견제용임을 알 수 있었다. TPP 타결 직후 오바마 대통령의 일성이 이를 증명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TPP가 미국 경제에 얼마나 긍정적 효과를 미칠지를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중국 같은 국가가 세계 경제규칙을 쓰도록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예상보다 빨리 TPP가 타결되도록 미국이 서두른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한마디이다.

문제는 우리의 대응 전략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국회에서의 추궁에 대해 대뜸 "가입을 적극 검토하고 쌀시장은 제외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최 부총리의 발언은 여러모로 부적절하다. 사퇴가 예정된 시한부 부총리의 책임지지 못할 발언일 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충분한 검토 없는 즉답에 가깝다.

미국은 위에서 본대로 경제보다 외교·안보 동맹에 가까운 틀로 TPP를 인식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을 비롯한 주요 대선 후보들이 모두 반대 의사를 밝히고 나선 것은 그 때문이다. TPP가 안보를 얻는 대신 미국 산업과 노동계에 피해를 준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현재로서는 미국 의회 비준도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 실기했다고 주장하는 의견에 정부가 대뜸 동조하는 것은 전체 국면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환태평양국에 속하면서도 TPP 창립국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우리가 미국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한 것은 중국을 의식하여 못한 것이라고 한다. TPP 타결 이후 대만, 필리핀, 콜롬비아가 향후 가입을 원하고 중국도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과 함께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전략을 가다듬으면 된다.

우리 정부에 항상 아쉬운 부분은 전체 판세를 보면서 장기적 행보를 취하는 전략적 사고가 부족한 점이다. 논란은 언제나처럼 친미·친중, 친일·반일 식의 선택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랜 기간 싱크탱크와 대학 연구소 등에서 토론과 합의를 거쳐 전략을 다듬어 온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오동잎 하나가 떨어지는 것에서 가을이 온 것을 알고, 흔들리는 나뭇잎에서 바람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기회를 놓쳤다고 보는 지금이야말로 경제 외에 TPP가 가지는 다양한 의미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진행할 때이다.

※노동일: 1957년생. 중졸검정고시. 서울공고·경희대 법대·미국 사우스웨스턴 로스쿨 졸업. 미 연방 변호사. 현 KBS1 라디오 공감토론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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