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여배우 중 가장 유명하고 장래성이 있는 김유정이 여주인공인 살인자의 딸 역으로 반전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을 연기한다. TV 드라마와 각종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순수 청년으로 호감을 사고 있는 손호준은 약혼녀를 잃은 고통 속에 살아가며 복수심에 사로잡힌 고등학교 교사를 연기한다. 그리고 TV와 영화에서 코미디와 진지한 드라마를 오가며 존재감 있는 조연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성동일이 형사로 나와 묵직한 주연의 위치에 선다. 성동일, 손호준, 김유정의 조합은 관객의 관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데,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에다 제목 또한 '비밀'이니 세 사람 각자가 자기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오랜 세월을 보낸 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근사한 장르물을 기대하게 한다.
세 명의 배우 모두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다는 점 또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인이다. 발랄하고 귀여운 이미지의 김유정이 극악무도한 살인자의 딸이라는 주위의 시선에 어떻게 강하게 맞서게 될지, 맑은 눈빛의 손호준이 어떤 잔인한 복수극을 펼치게 될지, 성동일은 어떤 비밀의 열쇠를 쥐고서 결정적인 순간에 폭발력을 발휘할지가 궁금하다.
영화의 이야기는 묻지마 살인 이후 남겨진 세 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가해자의 딸, 피해자의 연인, 그리고 사건의 한 가운데 파고든 형사. 어느 날 남철웅(손호준)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가 살인범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이다. 한편 살인범을 체포한 형사 이상원(성동일)은 갈 곳이 없어진 살인범의 딸 정현(김유정)을 입양해 열성을 다해 키운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뒤, 정현과 철웅은 제자와 선생의 관계로 만난다. 둘은 서로의 비밀을 숨긴 채 서로 교감하며 가까워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의 관계가 밝혀지고 만다.
영화는 두 명의 신인감독이 함께 각본을 쓰고 공동 연출한 데뷔작이다. 각자 기구한 사연을 가지고 운명적으로 엮이게 된 세 사람이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각자의 비밀을 폭로하며 반전을 거듭하면서 사건의 진짜 내막이 얼굴을 드러내게 된다. 결정적 장면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에서 영화는 많은 질문을 던진다. 묻지마 살인을 방지할 사회적 안전망이 가능한가, 공권력은 구제불능의 범죄자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피해자의 사적 복수는 정당한가, 사형제도는 정당한가, 피해자의 트라우마는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가, 가해자의 남겨진 가족들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가.
살인자의 딸과 양아버지가 된 형사, 그리고 제자의 아버지로 인해 연인을 잃은 남자, 이 얽히고설킨 관계, 그리고 마지막에 드러나게 될 비밀, 평범한 얼굴 뒤에 숨은 비통한 감정과 복수심 등 영화는 많은 화두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배우들은 억지로 꿰어 맞추어진 상황에서 과잉된 연기로 소모되고 만다.
살인자는 그저 자신의 화를 참지 못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쓰레기로 설정되어 배경에 대한 그 어떤 호기심도 일으키지 못한다. 살인의 대상이 된 여성은 남자친구의 애정을 갈구하다 홧김에 뛰쳐나가 범죄의 대상이 되는데, 남자 주인공의 현재의 비통한 감정과의 극적 대비를 위해 과거 회상용으로만 쓰이는 청순가련형의 상상적 대상일 뿐이다. 이야기의 전제 자체가 개연성이 없어서 이후의 전개 역시 억지스럽게 전개될 수밖에 없다. 클라이맥스에서 은폐하거나 드러내기, 그리고 복수의 역전 관계를 통해 감정을 끌어올리려고 하지만, 이 또한 연출력의 한계로 인해 눈물 짜내기 이상의 그 어떤 감정적 울림을 주지 못한다.
서사의 거친 비약과 개연성이 부족한 상황에 대한 설명적 대사 처리, 캐릭터의 복잡한 감정에 대한 얄팍한 연기 해석 등 여러 부분에서 억지스러워 몰입이 쉽지 않다.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현대 도시적 장르의 틀 안에서 가능한한 다양한 변주들이 주는 즐거움을 이 영화를 통해서 얻지는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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