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通] 대구미술관 초대 전시회 갖는 이명미 작가

"40년 작품 인생 회고전? 지금까지 활동 '중간정산' 하는 반환점일 뿐"

40년 동안 새로운 예술세계를 모색하는 이명미 작가는 아직도 자유롭게 날고 싶다고 말한다.
40년 동안 새로운 예술세계를 모색하는 이명미 작가는 아직도 자유롭게 날고 싶다고 말한다.
관람객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이명미 작가.
관람객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이명미 작가.

작가 이명미는 요즘 싱글벙글,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특유의 긍정적 에너지로 밝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뭔가 특별한 일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유는 있었다. 대구와 서울 미술관과 화랑에서 동시에 초대받아 전시회를 열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정도 지나면 화단의 무대에서 많은 작가들이 사라지는 현실에서, 그것도 미술계 주류의 흐름에 거슬러 자신만의 작업을 고수해온 이 작가에게는 요즘 보상 차원을 넘어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하다. 'Tell Me'(말해 주세요)전이 열리고 있는 대구미술관 전시실에서 그를 만났다.

◆놀이터에서 뛰어놀 듯…장난기 넘치는 붓질

그의 작품은 화려하고 에너지가 철철 넘친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분방한 붓질, 화려하고 강렬한 색상을 통해 밝고 명랑하면서도 힘찬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의 작품은 '놀이'에서 출발한다. 작품은 노란색과 분홍색 등 밝은 색채가 중심이 되어 밝고 명랑하다. 가볍게 장난치듯 나열한 텍스트와 기호들은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마치 관람객과 놀이를 제안하는 듯하다. 그의 놀이 행적은 단순함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변주로 전개된다. 자아 중심적 어린이 그림 속 형상처럼 과감하고, 생략되고, 변형되었지만 대상의 본질을 한눈에 알아보게 생동하는 이미지들이 바로 그것들다. 속도의 완만, 힘의 강약의 리듬을 타며 장난기에 힘이 넘치는 붓질,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꾹꾹 반복적으로 찍어나간 점, 낯선 원색의 대비가 싱싱함을 자아낸다. "작업 초기 개념적이고 미니멀한 미술을 할 때는 심적 불편함을 느꼈는데 다양한 색과 형상, 그리고 다양한 작업방식들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숨통이 트이면서 창작이 즐겁고 신나는 일이 되었다"고 했다. 이명미에게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매일매일의 삶인 셈이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감성 플레이', 즉 놀이로 여긴다고 했다. 어린아이가 놀이터에서 꿈동산을 만들 듯 꽃동산을 피워 간다. 여기에 작가의 의도만 슬며시 집어넣는다. 그러기에 그에게 그림은 꿈꾸는 곳이자 무한한 필드다. "저는 잠을 제대로 못 자거나 정신 상태가 안 좋을 땐 붓을 안 든다. 중구난방의 선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감정의 균형을 잡았을 때만 강한 선이 나온다. 눈물을 쏟기보다 안에서 삭혀서 분출시키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일탈도 정격(正格)이 구축됐을 때 의미가 있죠."

최근 이 작가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형상과 함께 문자를 결합하는 방식이다. 작업 초기 간단한 단어에서 시작해 유행가 가사를 비롯해 시, 성경 구절까지 다양하다. 그것은 작품 안에서 형상과 문자 사이에 서로 간의 밀고 당기는 관계를 형성하며, 이미지만 존재했을 때와는 다른 관람자들에게 풍부한 해석의 코드를 던져 준다. 형상과 그것을 지칭하는 언어의 관계라는 철학적인 물음뿐만 아니라 재치있는 유머가 되어 관람자를 웃게 하기도 하고, 그 언어가 우리 마음의 한 부분을 건드리고 깨달음을 주는 화두가 되기도 한다.

또한 최근 그의 작업에서는 유행가 가사 또는 일상어들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작가가 선택한 우리 시대의 일반적인 감성을 담은 가요의 한 소절과 이미지들이 결합된 작품을 한 개인의 인생 경험에서 우러나온 따뜻한 감성을 관람자들에게 전하며, 쉽게 공감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작품 안에서 이미지가 결합된 노래 가사들은 단지 시각적인 감상뿐만 아니라 기억 속에 간직한 멜로디라는 청각적인 요소도 자극하며 시각과 청각이라는 공감각적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작품들은 판매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고개를 젓는다. "수집자에게는 그것이 작품에 방해되는 요소로 보이는가 봐요."

◆회고전이 아닌 터닝 포인트

이 작가는 이번 전시를 40년 작품 인생을 돌아보는 '회고전'이라는 말을 싫어했다. 대신 지금까지 활동을 '중간정산'하고 반환점을 도는 '터닝 포인트'란 표현이 적절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 65세인 나이가 무색하게 느껴진다. 시쳇말로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감각도 살아 있고, 세상을 보는 눈도 살아 있다. 무엇보다 활동 초기부터 '미학적 관습에 대한 거부와 저항'의 가치가 아직 살아 있다. 그는 "남이 걸어간 길을 가면 발은 젖지 않겠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내디딘 첫 걸음은 평생 흔적을 남길 수 있다"며 "살아 있고자 노력하고 깨어있고자 노력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신문이나 책도 많이 읽고, 흘러간 유행가뿐만 아니라 최신곡도 관심이 많다고 했다. 사고의 유연성을 갖기 위해서라는 것.

그리고 40년 동안 해왔던 것처럼 하고 싶은 것, 고집스레 추구하고 싶은 것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작가는 "그림자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내 발자국을 내려 한다. 내 발자국은 바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창조'"라고 했다.

달변이다. 청산유수 같다. 한 번 말을 시작하면 끝이 안 보인다. 미술에 대한 조예도 깊어 중간에 말을 끊기가 쉽지 않았다. 1시간 정도 계획하고 시작했는데, 2시간 30분을 훌쩍 넘겼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할 이야기가 남은 듯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최재수 기자 biochoi@msnet.co.kr 사진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이명미 작가가 걸어온 길..

실천으로 보여온 '미학적 관습에 대한 거부와 저항'

1993년 국내 여성 화가로는 처음으로 일본 도쿄화랑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회화'라는 장르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변화를 거듭하며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뚜렷이 구축해온 작가 이명미는 1950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그는1970년대 한국현대미술사의 전환점이 되었던 대구현대미술제에 이강소와 최병소 등과 함께 발기인으로 참여(1974년)해 '미학적 관습에 대한 거부와 저항'을 실천으로 보여준다.

이 작가는 1970년대 중반 '놀이' 연작을 시작한 이래 특유의 고집과 특출한 재능, 열정적인 활동으로 1980년대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여성작가로 인정받는다. 이후 캔버스작업뿐만 아니라 천, 종이 작업 등 여러 평면 매체들을 이용한 다양한 화면들을 통해 1980, 90년대 미학적 관습에서 벗어난 화가로 평가받으며 한국의 주요 전시회와 일본의 동경화랑(1993년)에 초대되는 등 독보적인 활동을 이어간다. 그리고 자신의 병과 딸의 죽음 등으로 잠시 숨을 고른다. 오뚝이처럼 일어난 그는 자신의 '놀이'이자 '삶의 에너지원'인 창작활동을 통해 그 시간을 극복하며 200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다수의 전시에 참여하면서 한층 더 의욕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대구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말해 주세요'전은 1970년대부터 2015년까지 작가의 시기별 대표작들을 심층적으로 보여주는 전시이다. 전시 기간은 2016년 2월 9일까지. 053)790-3028.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