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육사(1904~1944)의 고명딸 이옥비(75) 씨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16일 대구를 방문했다. 대구가 이육사가 40년 인생 중 절반가량(1920년대~1937년 서울로 이사)을 보낸 곳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날 이 씨는 대구 북성로에 현재 공사 중인 가칭 대구이육사문학기념관에 들러 상량문이 새겨질 대들보에 이육사의 시 '광야'의 한 구절을 직접 적었다.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기념관은 올 연말 또는 내년 1월 16일 이육사의 기일에 맞춰 개관한다. 기념관은 안동에 있는 이육사문학관과 함께 대구에서 유년기와 청장년기를 보낸 이육사의 흔적을 기리는 공간으로 조성된다.
이 씨와 박현수 경북대 교수 등 일행은 이날 이육사의 대구 흔적을 두루 찾는 시간도 가졌다. 서문로교회 자리에는 원래 '실달사'라는 일본 사찰이 있었는데, 그 옆에 이육사의 숙부 이세호의 집터가 있다. 이육사가 16세 때 대구로 와 거처를 찾지 못해 잠시 머문 곳이다. 이육사가 기자로 일했던 계산동 중외일보 대구지국 자리에는 현재 모텔이 들어서 있다. 이육사가 문인 등 사람들을 만났던 달성공원 건너편 조양회관 자리에는 지금 빌딩이 위치해 있다. 이 씨는 "모두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조금만 더 일찍 찾아왔더라면 좋았을 텐데…"하며 안타까워했다.
일행은 이후 남산동으로 이동, '대구부 남산정 662번지'라는 이육사의 경찰 신문조서 속 기록이 가리키는 곳을 방문했다. 이육사의 부모와 형제들이 한데 모여 살던 곳이다. 이옥비 씨는 아버지가 젊은 시절 살던 이곳을 난생처음 찾았다. 그러나 미로 같은 골목길 속 굳게 대문이 잠긴 이곳과 주변 주택가는 재개발을 이유로 향후 철거될 예정이다. 오래전부터 이육사의 대구 흔적을 발굴하고 있는 박현수 교수는 "이곳은 대구에 유일하게 실물이 남아 있는 이육사의 흔적이다. 늦었지만 보존 방안이 절실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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