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누굴 위한 책인가?

'오랑캐 원(元)나라는 송(宋)나라를 멸망시키고 세상을 통일하여 지나온 세월이 백 년에 이르니 오랑캐의 융성함이 이 같은 적이 없었다. 하늘이 더러운 덕을 싫어하여 대명(大明)이 중천에 떠오르니 성스럽고 신령스러운 후손들이 이어 천만년에 이를 지어다.'

조선조 아동용 교재인 '동몽선습'(童蒙先習)의 중국 역사에 대한 설명 일부다. 조선은 유학이 지배했다. 어린이는 일찍부터 천자문 공부를 마치면 동몽선습 같은 책을 읽었다. 그리고 다양한 서책으로 단계를 높여 유학 세계로 들어갔다. 그런 배움 구조였다. 즉 조선 아이는 일찌감치 중국인이 만든 천자문과 16세기 조선학자가 쓴 동몽선습 등을 통해 중국에 대해 눈을 뜬 셈이었다.

동몽선습의 저자는 남의 땅, 중국의 나라 주인이 송나라에서 원나라, 다시 명나라로 바뀐 것을 두고 극명하게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송을 무너뜨린 원은 오랑캐, 새로 들어선 명은 성스럽고 신령스러운 후손이 계승한 나라로 봤다. 그래서 막 배움의 걸음마를 뗀 조선 아이에게 명의 존재를 은연중 드러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조선 아이 머릿속에는 중국 오랑캐는 백 년을 가고, 하늘의 보살핌을 받는 명은 천만년을 이어갈 것이라는 '대명' 편견과 왜곡이 자리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했다. 한번 뇌리에 박힌 이 편견과 왜곡은 엄청난 후유증을 낳았고 중국의 새 주인이 된 청(淸)나라를 외면해 정묘'병자호란을 자초했다.

'대명' 편견에 꽉 막힌 조선의 유학 사회는 결국 일본에 나라를 뺏기고 고집한 유학도 잃었다. 조선을 삼킨 일본 역시 시데하라 히로시라는 사학자를 통해 교육으로 조선 학생 세뇌에 들어갔다. 조선 교육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교과서 검정제도'로 학생 교재를 주무를 꾀를 냈다. 조선인은 당파 싸움을 좋아한다는 식의 당파성과 분파성을 강조, 패배감과 좌절감부터 심어주었다. 아직도 살아남은 식민사관의 '편견과 왜곡'의 싹은 그렇게 텄다.

지금 역사교과서 국정화 여부를 둘러싼 대결과 분열은 가당찮다. 누구를 위한 교과서인지를 생각하면 모두 부질없는 짓거리일 뿐이다. 학생을 위한 새 교과서는 보수와 진보를 넘어, 편견과 왜곡 없는 균형된 역사를 담아야 한다. 편견과 왜곡의 희생은 조선과 일제 때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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