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시와 노래

얼마 전 영남대병원 입구에 있는 '민트고래'라는 카페에 공연을 보러 갔었다. 공연 제목이 '청춘파티'라 우리 같은 40대가 어울릴만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올해 전국연합학력평가 출제와 EBS 교재 제작을 함께했던 선생님이 보컬로 있는 밴드가 출연한다고 해서 같이 일했던 선생님들과 응원 겸, 문화 체험 겸해서 간 것이다. 민트고래에서의 공연은 대구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하는 느낌이 드는,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없이 출연한 가수들과 관객들이 어우러지는 잔치였다.(무대를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관객들이 노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 공연을 보면서 새삼 느꼈던 것은 세상에는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참 많고, 또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남녀와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날 출연진 중 유니커즈라는 팀은 전국 무대에서도 빠지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는데, 몇 곡의 노래를 부르는 동안 때로는 신나게, 때로는 가슴 짠하게 만들었다.

이런 노래의 힘은 우리 선인들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선인들의 노래는 시에 리듬과 가락을 얹어서 표현한 것인데, 시를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것에 대한 생각은 다음 시조에서도 잘 드러난다.

노래 삼긴 사람 시름도 하도할샤

닐러 다 못닐러 불러나 푸돗던가

진실로 풀릴 것이면 나도 불러 보리라.

이 시조는 조선 중기의 문인인 상촌 신흠(1566~1628)의 작품이다. 신흠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었지만 학문에 전념하여 벼슬을 하기 전부터 선비들 사이에서 문명(文名)이 자자했다. 그가 쓴 시나 산문들은 지금 사람들이 읽어도 명문장이라고 감탄을 할 정도로 간결하면서도 내용의 깊이가 있고, 표현이 상황에 아주 적확(的確)하다. 그런 그였지만 율곡 이이를 비난하는 상소문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해서 동인들의 배척을 받아 능력에 맞지 않는 말직에 머물러야만 했다. 말직에 있었지만 주머니 속의 송곳이 언젠가는 드러나듯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선조의 부마가 되었다. 그렇지만 처남인 광해군이 즉위한 뒤 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이고, 계모인 인목대비를 폐위시키는 가족 간의 비극을 보았고, 또 그들을 지키려다 유배를 당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가슴에 울분, 원망, 죄책감과 같은 감정들이 쌓일 만도 했다. 여기에서 말로 하면 될 것을 노래로까지 하는 이유에 대해 맺힌 것을 풀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이 시조에서 말하는 '풀린다는 것'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노래로 불러본다고 해서 정치 현실이 바뀔 리도 없고, 세상이 갑자기 좋아질 리도 없다. 단지 노래를 부르면서 답답한 마음을 잠시 잊고 위안을 받을 뿐이다. 이렇게라도 맺힌 감정을 풀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은 병이 들게 된다.

중국의 사서삼경 중 하나인 '서경'에 보면 시와 노래에 대해 정의한 '시언지가영언'(詩言志歌永言)이라는 말이 나온다. 시라는 것은 솔직한 마음을 말한 것이고, 노래라는 것은 말을 길게 뽑는 것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체면 때문에, 혹은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서 자신의 본심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숨기거나 꾸며서 말을 하는데, 그런 말에는 감동이 없다. 시는 솔직한 마음과 절실함이 말로 나와 그 감정이 통하는 것이다. 그런 시를 길게 뽑으면 또 그에 맞는 곡조와 리듬이 생겨서 노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와 노래는 태어날 때부터 가질 것 다 가지고 불편함이 없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세상에 할 말이 많은 못난 우리네 이웃들의 '애달픈 양식'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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