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노벨상과 문학의 정치

벨라루스의 알렉시예비치 노벨 문학상

정작 조국에선 이념·문학성 논란 불거져

"서방 입맛 맞게 쓴 보답" 정치 기획說도

러-벨라루스 상황이 극적 효과 더해줘

매년 노벨상이 발표되는 10월이 되면 전 세계인들의 이목은 스톡홀름으로 집중된다. 경제학상, 물리학상, 생리-화학상, 의학상, 평화상 등 모든 상이 큰 의미를 지니지만, 가장 일반인들의 관심을 끄는 분야는 아마도 문학상일 것이다. 올해의 노벨 문학상은 벨라루스의 여성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수상했다. 개인적으로도 영광이고 국가로서도 명예로운 이 상을 바라보는 벨라루스, 그리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입장은 다소 복잡하고 상반된 것이다.

알렉시예비치는 1948년,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 출신 어머니와 벨라루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러시아어로 작품을 써오고 있다. 그녀의 전작들이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했던 소련 여성들과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의 원전 폭파사고를 다루고 있는 것은 이처럼 작가의 태생과 연관되어 있다.

노벨상 수상 결정 이후 러시아와 벨라루스 언론의 반응을 살펴보니 작가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다. 서방 여러 국가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과 달리, 정작 작가의 '조국들'에서는 이념과 창작 의도, 그리고 문학성에 대한 논란까지 불거진 것이다. 작가가 창시한 '목소리 소설'이라는 장르도 인터뷰를 짜깁기한 것에 불과하며, 그 내용은 아픈 역사를 선정적으로 까발리는 센세이셔널리즘이라고 폄하하는 의견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최근 크림 사태와 시리아 공습 등으로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서방과 러시아의 껄끄러운 관계를 고려할 때, 푸틴에 대해 공공연히 반대 입장을 표명해 온 작가에 대해 러시아 측이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다 보니 그녀의 노벨상 수상이 문학적 성과가 아니라, 서방의 입맛에 맞게 작품을 쓴 데 대한 보답이자, 일종의 정치적 기획이라는 설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 현재 가장 난처한 입장에 처한 사람은 벨라루스의 대통령 루카셴코일 것이다. 알렉시예비치의 노벨상 수상으로 이 나라가 갑자기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던 바로 그 시기, 정확히는 그로부터 사흘 후 압도적인 지지율로 다섯 번째로 대통령을 연임하게 된 루카셴코는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축전을 보내야만 했다. 자기가 출판조차 금지시킨 그 작가에게 말이다.

노벨 문학상은 종종 문학 외적인 요인, 특히 정치와 연관되곤 한다. 이는 문학이 순수하게 예술을 지향해야 하는가, 아니면 사회의 문제에 눈감지 말아야 하는가라는 해묵은 논쟁과는 별개의 질문이다. 말 그대로 문학이 외부 정치와 긴밀히 연관되어 평가된다는 것인데, 특히 노벨 문학상을 받은 러시아 작가들의 이름과 더불어 자주 언급된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네 명의 러시아 출신 작가 중 세 명이 반체제 인사로 조국을 떠난 망명자였고, '닥터 지바고'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파스테르나크는 당국의 압력으로 수상을 거부한 바 있다. 1987년 역시 망명자였던 브로드스키를 마지막으로 30년 가까이 러시아는 노벨 문학상 작가를 배출하지 못했다. 기묘하게도 이 시기는 소련의 와해와 냉전시대 양극 체제의 붕괴와 맞물린다.

이런 논란을 접하며 그녀의 대표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어보았다. 2차 대전에 참전했던 수많은 소련 여성들의 인터뷰를 나열한 이 소설은 분명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문학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러시아인들에게 2차 대전, 히틀러에 대한 승리는 신성불가침의 것으로 여겨진다. 작가는 그런 일반적 정서와 달리, 승리를 미화하지 않고 인간이 짐승과 다를 바 없어지는 공포의 순간에 주목했다. 적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우는 아이를 자기 손으로 죽인 어머니, 독일군 포로를 잔혹하게 고문하거나 독일 소녀를 윤간한 소련 군인들의 이야기는 러시아인들이 왜 알렉시예비치에게 분노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준다. 작가는 "모든 것은 문학이 될 수 있다"는 말로 작품의 정치성과 문학성에 대한 논란을 일축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둘러싼 최근의 정치적 상황이 그녀의 노벨상 수상에 극적인 효과를 더해주었다는 사실이다.

※윤영순: 1971년생. 경북대 노어노문과 석사(러시아 현대소설).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사범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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