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지방 도전의 유쾌한 성공 경험 읽기

'2015 경북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가 끝난 뒤, 대회 때 함께 일한 몇몇 장병에게 책을 선물했다. 이안 로버트슨의 '승자의 뇌'와 말콤 글래드웰의 '다윗과 골리앗'이었다. 이번 대회 성공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길 바라서였다.

'다윗과 골리앗'은 힘에 대한 고정관념이 얼마나 오도돼 왔는지를 반추하게 한다. 약자(언더독)가 약자로서의 강점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면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근거와 함께 자신감을 불러일으킨다.

양치기 소년에 불과했던 어린 다윗이 투구와 갑옷, 창과 칼로 중무장한 210㎝의 거인을 돌 무릿매질 한 번으로 쓰러뜨린 것이 단적인 예다. 골리앗의 거대한 몸집은 말단비대증과 복시증(複視症) 때문에 약점으로 작용한 반면, 다윗은 백병전이란 기존 싸움판의 룰 대신 속도와 기동성으로 대적해 개가를 올린다.

이번 대회는 열악한 인적 물적 한계를 딛고 성공했다. 호화판 국제대회에 익숙했던 많은 사람의 우려와는 달리 외국 선수와 외신기자들로부터 '원더풀'이란 찬사가 쏟아졌다.

이 대회에 투입된 1천653억원은 4년 전 브라질 리우 세계군인체육대회 예산의 8%에 불과했다. 경기장 하나 새로 짓지 않았다. 모두 군부대와 지자체의 기존 시설을 활용했다. 문경선수촌의 경우는 아예 800억원이 드는 아파트 건설 대신 35억원으로 캐러밴을 임차했다. 자원 배치를 최적화하면서 '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는 절약정신으로 관리경영을 했다.

개최지 8개 시군에 얽힌 스토리와 따뜻한 인심으로 부족함을 메우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 한마디로 국제종합스포츠대회는 대도시에서, 화려한 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골리앗'적인 인식과 관행에 정면으로 도전한 '다윗'적인 역발상이라 할 수 있다.

'승자의 뇌'는 자칫 간과될 수 있는 이 대회 '성공 경험'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돈 킹을 비롯한 국제 복싱계의 유명 프로모터들은 중요한 타이틀전을 앞두고 '토마토 통조림 깡통'이란 은어로 불리는 약체 선수들과 전초전을 치르게 한다. 승리를 통한 성공 경험을 맛보게 하기 위해서다.

성공 경험은 뇌신경 전달물질의 분비를 통해 뇌의 구조와 화학적 구성을 변화시킨다. 동기 부여의 회로가 늘어나면서 성취 욕구가 커진다. 그리고 몸과 마음은 물론 행동에까지 변화를 일으킨다. 국제종합스포츠 대회를 한 번도 치러보지 않았던 경북도와 8개 시군은 '지방의 도전'이라 할 이번 대회를 통해 유쾌한 성공을 경험했다. 이는 향후 각 지자체의 발전에 커다란 자신감과 성취 동기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민관과 함께 매트릭스형 조직으로 이 대회를 주도한 군 당국으로서는 이번 대회의 성공 경험을 통해 국방행정과 예산운용 체계를 업그레이드할 자신감을 갖게 됐다.

이번 대회는 공유자산의 공동 활용이란 측면에서도 공공 분야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간 각종 국제대회를 앞두고 각 지자체는 초호화판 시설을 짓는 데 혈안이 됐다. 공기업과 공공기관들도 평소 엄청난 혈세로 사옥과 연수원 등을 경쟁적으로 세워 왔다. 그러나 이들 시설은 기관 이기주의 때문에 외부 개방 대신 '그들만의 시설'에 머물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엔 국군체육부대와 지자체, 대학 등이 시설을 내놓아 예산 낭비를 막았다.

이제 남은 과제는 조직위의 방침대로 시행착오까지 포함한 대회 준비 전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다. 조직위가 해체되고 참여 인사들이 모두 흩어지더라도 기록을 오롯이 남겨 뒷날 유사한 행사 때 예산과 시간, 경험의 낭비를 막도록 해야 한다. 큰 행사가 끝나면 모든 것이 공중으로 사라져 버리고 매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사례를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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