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상할 수도 있지만 또 역사교과서 이야기다.
정부는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며 그 이름을 '올바른 역사교과서'라고 지었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온 나라가 역사전쟁 속으로 빠져들었다. '올바르게 만들겠다'는 역사교과서에 밀려 현 정부의 올 하반기 국정 과제이자 목표라던 4대 개혁도 온데간데없어졌다. 역사교과서 문제가 블랙홀이 돼 버렸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역사가 만사인 형국이다.
정부는 여론전에 전력을 쏟기로 했다. 국민의 마음을 얻어 국정화에 힘을 싣기 위해서다. 부실 검정으로 역사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교육부마저 반성과 사과도 하지 않고 신문 광고까지 내며 대국민 홍보전의 최일선에 나섰다. 야당도 밀릴 수 없다며 사생결단식으로 국정화 저지 투쟁에 나서고 있다. 정치권뿐만이 아니다. 보수 성향의 시민'관변단체들은 국정교과서에 찬성을,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들은 국정교과서 결사 반대로 편을 갈라서 피 터지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더 이상 역사전쟁이 아니다. 정치투쟁이다. 그야말로 온 나라가 난리도 아니다. 먹고살기 빠듯한 서민들은 패거리 역사전쟁에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냉정을 되찾고 뒤돌아보자. 역사전쟁의 단초는 현행 검정교과서가 제공했다. 식민지 지배와 전쟁의 참화까지도 극복하고 5천 년 역사상 처음으로 굶주림에서 자유로워진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너무 인색한 평가는 자학의 역사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어느 쪽에 주안점을 두느냐를 사관(史觀)이라고 한다면 다수의 현행 검정교과서를 관통하는 사관은 분명 손질이 필요하다. 공과(功過)를 함께 봐야 한다지만 남쪽의 대한민국 역사에만 가혹할 정도로 냉정한 잣대를 들이댄 것은 잘못이다. 경직된 정치, 낙후된 경제, 피폐한 민생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이 굶어 죽는 북한의 현실에 대한 냉정한 평가도 반드시 필요하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역사는 성공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역사는 실패했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가 연출하고 정부 여당이 따라 하는 국정화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오죽했으면 시대착오적인 국정화를 들고 나왔을까 이해도 가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다. 문제가 있다는 검정교과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학계의 역량을 한데 모아 보완하고 제대로 개정하는 게 맞다. 새로 국정교과서를 쓰는 데 들이는 돈과 노력보다는 덜할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나서서 억지로 수술을 하자고 달려드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국정화에 대한 여론은 찬반이 팽팽하다고 한다. 의외다. 현행 교과서 문제로만 본다면 국정화 찬성은 훨씬 더 많아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절반이나 된다는 국정화 반대론자들이 현행 교과서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손질도 수술도 필요하지만 정부 여당이 앞장서서 하려는 국정화에는 반대표를 던진 것이리라. 시간을 두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손질이 필요 없는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어, 올바른 역사관을 갖도록 하자는 데는 분명하게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 믿는다.
정부가 하겠다고 발표를 한 이상 '올바른' 역사교과서는 분명 세상에 나올 것이다. 시간이 없고 집필자가 나서지 않아 다소 수준이 떨어지더라도, 그래서 곳곳에 오류가 발견되더라도 후년 3월이면 새 교과서를 학교에 내려보낼 것이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선거에도 역사처럼 승자와 패자가 있다. 2017년산 국정 역사교과서는 다음 대통령 선거의 승자에 의해 자리를 내놓아야 할지 모른다. 이러다간 역사교과서가 선거 승리 진영의 전리품이 될까 우려된다. 2017년 국정 역사교과서를 불과 1, 2년 만에 다른 교과서로 바꾸려 한다면 국력 낭비다. 또 5년마다 판본이 달라질 수도 있다면 더 문제다.
2017년본 국정 역사교과서를 정말 잘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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