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듀! 대구시민야구장] 18년간 청소 김홍철 반장

1997년부터 18년째 대구시민야구장의 유지
1997년부터 18년째 대구시민야구장의 유지'보수를 하고 있는 김홍철씨는 새 야구장에서는 한층 더 성숙한 관람문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분명 그리워질 것이다. 담장 밖에서 그라운드를 굽어보던 키 큰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하지만, 곧 잊힐지도 모를 일이다. 34년간의 영광과 좌절이 아로새겨진 연둣빛 인조잔디로서는 아쉽겠지만. 올해 한국시리즈를 끝으로 프로야구와 작별하는 대구시민야구장의 소싯적을 오랫동안 기억할 이들을 만나봤다.

"집에서 놀면 심심하기도 할 것 같았고, 워낙 정이 든 곳이라 다시 출근하기로 했죠. 신분이 바뀌는 바람에 월급은 팍 줄었지만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었죠. 선수와 관중이 크게 불편을 느끼시지 않았다면 지나간 18년은 그런대로 보람 있는 세월이지 않을까요?"

김홍철(67)씨에게 대구시민야구장은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의 현장'이다. 1997년부터 야구장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돌봐왔다. 정년퇴직한 2005년까지는 대구시청 기능직 공무원 신분이었고, 이후에는 용역회사의 '반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에게 출근 시간은 있지만 퇴근 시간은 따로 없다. 시즌 중에는 야구장 한쪽에서 쪽잠을 자는 날이 더 많다. 천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해내기 어려울 듯했다.

"야간경기 뒤 청소를 끝내면 새벽 1시가 훌쩍 넘습니다. 그런데 선수들은 다음날 점심 무렵이면 훈련하러 나옵니다. 전날 밤, 조명 꺼진 상태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오물까지 깨끗하게 치우려면 새벽부터 다시 일해야 하죠. 예전에는 오후에 청소하다가 타구에 맞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허허허"

20년 가까이 야구장의 그 많은 계단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니 무릎이 성할 리가 없다. 그처럼 경력이 오래된 직원 중에는 수술까지 받은 일도 있다.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가끔 젊은이들이 오기도 하지만 일주일을 버티지 못한다고 한다.

"올해부터 음식물 반입이 규제되면서 다소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경기당 6~8t의 쓰레기가 경기장 안팎에 버려집니다. 빗질하는 데에만 두세 시간이 걸리거든요. 다른 구장의 청소 아주머니들이 빗자루 대신 집게만 들고 계시는 모습이 TV 중계에 나올 때는 부럽기도 합니다. 하하하."

그래도 예전보다는 관람문화가 많이 나아졌다는 게 김씨의 회고다. 경기에 패한 날, 오물 투척을 줄이기 위해 관람석 안전망을 높이고 경찰력이 관중석을 감시하던 시절도 있었던 탓이다. 요즘 팬들이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선수들을 응원할 때면 그도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김씨에게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2011년 4월16일의 두산전이었다. 8회 두산의 공격 중 조명탑이 갑자기 꺼지면서 야구장은 암흑천지가 됐고, 새 구장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당시 사고는 3루쪽 조명탑의 변압기 고장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시민운동장 관리소의 전기 담당 직원이 대폭 교체된 직후라 대응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배터리로 작동하는 비상등만 켰더라도 관중의 불편이 훨씬 작았을 텐데…"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대구시민야구장에서 계속 일할 생각이다. 내년에 개장하는 '대구 삼성 라이온즈파크'는 삼성 구단이 직접 관리한다. 프로야구를 떠나보내는 그의 당부는 오직 하나였다.

"야구장을 대구의 명물로 만들려면 시민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전국에서 가장 깨끗하고 쾌적한 야구장은 경기장 좌석 하나하나가 모두 내 것이라고 생각할 때 가능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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