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중권의 새論새評] 대한민국은 언제 건국되었는가?

1963년생. 서울대 미학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 박사 수료. 중앙대 겸임교수. 카이스트 겸직교수
1963년생. 서울대 미학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 박사 수료. 중앙대 겸임교수. 카이스트 겸직교수

상해임시정부 부정하는 극우파 시선

선조들 반역 행위 정당화하려는 걸까

"대한민국 건국은 1919년" 64% 응답

국민 3분의 2도 빨갱이라 우길 텐가

코미디다. 대한민국 국사편찬위원장이 정작 '대한민국이 언제 건국되었느냐'는 간단한 질문에 대답을 못한다. 답변은 이미 헌법에 나와 있다. 우리 헌법은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건국 연도는 1919년. 그해에 임시정부가 건립됐다. 어느 나라의 임시정부? 당연히 '대한민국'의 임시정부다.

이렇게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뉴라이트를 비롯한 극우파들은 왜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되었다고 바득바득 우길까? 간단하다. 한마디로 자기들은 상해임시정부를 '대한민국' 정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시각은 상해임시정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던 제국주의 일본의 것이다. 하긴, 일본이 식민지배로 미개한 조선을 개화시켰다고 우기는 이들이니, 상해임시정부를 부정한들 놀랄 일도 아니다.

왜 그들은 굳이 상해임시정부를 부정하려 들까? 간단하다. 일제강점기 동안 대한민국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야, 자신들의 선조가 저질렀던 반역 행위가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대한민국이 존재하지 않았다. 고로 그 시기에는 '애국자'도 없었고, '반역자'도 없었다. 왜? 충성할 조국도, 배반할 조국도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바득바득 대한민국 건국 연도가 1948년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상해임시정부를 부정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점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없었다면, 당시 한반도의 유일한 국가는 일본뿐이었다. 따라서 당시 한반도의 유일한 국가를 사랑한 친일파들이야말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애국자가 된다. 이 대목에서 슬쩍 '식민지 근대화론'을 끌어들여 오자. 그러면 친일파들은 졸지에 당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국가였던 일본을 도와 미개한 조선을 근대화시키는 데에 기여한 애국세력으로 둔갑하게 된다.

물론 어느 나라에나 이런 요설을 늘어놓는 이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극우파들이나 주장할 법한 이 극단적 역사해석을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공식적으로 천명하는 나라는 (좀 산다는 나라 중에선) 한국과 일본밖에 없을 게다. 왜들 그럴까? 간단하다. 가족사와 민족사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부친은 혈서까지 써가며 일제에 충성을 맹세했고, 당대표의 부친은 황군에 축전을 보내고 비행기를 헌납했던 분이다. 참고로, 아베의 조부는 전범이었다.

이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관철시키려면 역시 색깔론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다. 전 청와대 대변인 왈, 1948년 북한에서는 '국가'가 건립되었다고 표현하면서 남한에서는 '정부'가 수립됐다고 표현하는 게 좌편향의 증거란다. 놀랍지만 이건 우리를 웃기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분은 저게 말이 된다고 진지하게 믿는다. 한마디로, 이 정권을 대변하는 부서의 문장 독해 능력이 초등학생 미만 수준인 것이다.

1948년 북한은 건국을 했다. 왜? 그들이 세운 국가는 우리가 1919년에 세운 국가와는 다른 국가, 즉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건국을 할 필요가 없었다. 왜? 대한민국은 이미 1919년부터 존재해 왔기에 일제강점기 동안 붙이고 다녀야 했던 '임시'라는 말만 떼어내면 됐기 때문이다. 1948년 남한에서 '정부가 수립'됐다는 말은, 곧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이 북한이 아니라 남한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63.9%가 대한민국은 1919년에 건국됐다고 대답했다. 1948년에 세워졌다는 대답은 21.0%에 그쳤다. 역사학자의 90%가 좌파라고 말하는 분들은 국민의 3분의 2가 빨갱이라고 하고도 남을 게다. 두 눈이 오른쪽으로 몰려 있는 가자미의 눈에는 세상 대부분이 좌편향으로 보이는 법. 이 가자미에게 대한민국의 좌편향 헌법을 다시 인용해 드린다.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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