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꿈꾼다. 한 번쯤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꿈. 안타깝지만, 이는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일이기에 꿈으로 그칠 뿐이다. 그런데 완벽하진 않아도 비슷하게나마 꿈에 다가설 방법이 있다. 연기자가 되는 게 그 방법이다. 배우는 배역을 통해 쫓는 자가 되고, 쫓기는 자가 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삶을 살아볼 수 있다. 그래서 대중은 매체에 비치는 배우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반면에 이 부러움을 취미로 치환한 이들이 있다. 연기가 좋고 연극이 좋은 사람들이다.
◆연극에 버무려진 젊음, 청춘 샐러드
대구에는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연극에 관심이 없던 이들이 뭉쳐 만든 극단이 있다.
일반인 극단 '청춘 샐러드'의 시작은 극단 '에테르의 꿈'이 취미로 연극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주 2회 2시간씩 5개월 과정으로 마련한 '일반인 연극 워크숍 프로젝트'였다. 청춘 샐러드는 이 워크숍 1기 수료생들이 만든 결과물이다. 그렇다고 결과물까지 취미 수준인 건 아니다. 청춘 샐러드 단원들은 워크숍 프로젝트를 통해 연기는 물론이고 무대 디자인, 조명 디자인 제작, 분장 등 공연 분야를 전문적으로 체험하고 배웠다. 1기생들은 교육과정 수료와 함께 지난 8월 대구시 남구 대명동 우전소극장에서 실제 공연까지 마쳤다.
청춘 샐러드 단원들은 "좋아하는 연극을 함께 보러 다니고, 마음에 쏙 드는 극본이 있으면 함께 공연도 하는 게 행복"이라며 "극단을 만든 것도 꼭 전공자나 전문가가 아니어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에게 연기를 지도한 박지수 에테르의 꿈 대표는 "연극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보면서 현대인들이 주목받고 싶어하고, 삶에 억눌린 부분을 표출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연기를 하면 말과 행동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연기를 통해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행복을 찾은 1기생들을 보며 프로그램 진행을 잘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연극은 또 다른 인생
극단 청춘 샐러드에는 "연극은 나에게 또 다른 인생"이라고 말하는 단원이 있다. 바로 서문규(21'대학생) 씨가 주인공이다.
서 씨는 "무대에 서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져요. 내 몸이 불편하다는 걸 무대 아래에서 말하기 전에는 관객들이 전혀 몰랐거든요. 인간 서문규가 아니라 배우 서문규로 봐주더라고요"라고 했다.
그렇다. 서 씨는 몸이 불편하다. 서 씨는 신생아 때 39℃가 넘는 열병을 앓으면서 뇌가 손상됐고, 3살 때 뇌성마비 3급 판정을 받았다. 지금은 꾸준한 재활치료 덕분에 몸 상태가 많이 좋아져 지난해 뇌성마비 6급 판정을 받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돌아오는 건 손가락질과 놀림뿐이었노라고 기억한다.
그는 "초등학교 때 저랑 짝꿍이 된 여자애들은 같이 앉기 싫다고 울고불고 난리가 나고, 그 친구 부모님이 학교에 찾아와 짝꿍을 바꿔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어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관심과 사랑에 대한 욕구가 두려움보다 컸나 보다. 올해 초 그는 SNS에서 극단 에테르의 꿈이 일반인 연극 워크숍을 연다는 홍보물을 발견하고 곧바로 지원했다. 그리고 3월부터 연극 연습을 시작해 8월 30일 첫 무대에 올랐다. 이제 서 씨는 사람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즐기고, 청춘 샐러드 단원들과 장난도 치는 해맑은 사람이다.
김민환 정신보건임상심리사는 "정신 증상 치료를 위한 심리극과 일반 연극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일반 연극과 같은 취미 활동을 통해서도 억압된 감정과 갈등이 표출될 수 있기 때문에 증상 완화에 분명히 도움은 된다"고 설명했다.
◆연극은 사막의 오아시스
"제게 연극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아요."
청춘 샐러드 단원 윤나정(24) 씨는 올 초 연극이란 오아시스를 만나기 전까지 직장 생활만 하는 사막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연극을 만나기 전 윤 씨는 직장 생활의 팍팍함에 지쳐 있었다. 쳇바퀴만 도는 듯한 일상을 뛰쳐나가고 싶은 욕망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그런 그가 찾은 합법적 일탈은 취미 생활이었다.
윤 씨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취미 생활을 찾기도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그는 과거 취미로 기타를 배운 적이 있다. 하지만 다시 기타를 손에 잡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자신의 급한 성격 탓이었다. 그러다 보니 결과를 빨리 보고 싶은 욕심도 컸다. 그런데 악기 연주라는 게 그리 녹록지 않았다. 배우는 시간을 못 견디고 포기해버렸다. 그에게 연극은 달랐다. 발성을 배우기 전과 후가 확연히 달라졌다. 윤 씨는 발견했다. 업무 외에 자신이 무언가를 이루는 모습을, 그리고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모습도. 또한 일상을 탈출해 다른 사람으로 살아볼 수 있는 점도 그에겐 매력적이었다.
윤 씨는 "저는 다른 사람에게 사랑과 관심을 주는 데 인색한 편이었어요. 그런데 연극을 하려면 서로 연기의 합이 맞아야 하잖아요. 상대역의 연기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레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사람으로 제가 변해 있더라고요. 그런 점도 좋아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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