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들의 한국사 국정교과서 집필 거부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역사 서술은 다양해야 하고, 역사 교육은 다양한 역사 서술을 학생들에게 소개해 스스로 판단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 같지만 문제가 있다. 이 주장이 성립하려면 사실의 정확한 기술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는 너무나 많다.
'정체되고 야만적이며 타락한 세계'라는 유럽의 동양관(觀) 즉 오리엔탈리즘이 어떻게 형성됐는가를 추적해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도 이에 해당한다. 이 책은 오리엔탈리즘이 동양에 대한 학술적 연구를 통해 구축됐으며, 그런 연구는 17세기 무슬림 세계에 대한 유럽 제국주의의 확장과 함께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버나드 루이스 프린스턴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동양에 대한 유럽의 탐구는 오스만 튀르크가 남동유럽을 석권하고 중부 유럽 일부까지 정복했던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프랑스와 영국의 대학에 아랍어 학과가 신설됐다. 제국주의 시대가 시작되기 훨씬 전이다. 이런 왜곡을 통해 사이드가 말하려 했던 것은 서구의 동양 연구가 '식민 통치의 합리화' 도구였다는 것이다.
이는 동양에 대한 편견을 만들고 조장한 유럽 학자들이 많다는 점에서 완전히 틀린 주장은 아니다. 문제는 사이드가 고대 그리스에서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슬림 세계를 연구하고 집필한 모든 사람이 그렇게 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유럽의 동양 연구자들 대부분은 제국주의 시대와 관련이 없다. 사이드의 주장대로라면 고대 그리스나 중세의 동양 연구자들은 제국주의 시대를 예견하고 연구를 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 서술이 정확한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말해준다. 그런 점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깨우치도록 해야 한다는 역사 서술 다양성 논리는 결정적 허점을 안고 있다.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는 1차 사료(史料)를 연구한 2차적 기술과 해석이다. 그것이 맞는지 여부를 판단하려면 1차 사료로 돌아가야 한다. 하려면 제대로 하자. 학생들에게 1차 사료부터 공부시키자. 그래야 스스로 그리고 바르게 깨우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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