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창작의 고통

9월 달력을 넘기면 고3들에게 입시와 수능은 당장 코앞에 닥친 현실이 된다. 모두들 마음도 급하고, 긴장되기도 하면서 심리적으로도 많이 불안정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3학년 담임들도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마라톤으로 치자면 40㎞ 지점을 통과한 선수처럼 거의 체력이 바닥난 상태가 된다. 몇 년 전 이맘 때쯤 아무 생각 없이 학교 뒷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단풍이 들어 있는 게 보였다. "어, 단풍 들었네"라고 말하다가 단풍 든 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산 것에 대한 생각을 시로 한 번 써 보았다.(시를 쓰는 데는 5분 걸렸다.)

오-메 단풍 들었네

교실 창 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

그 하늘에 맞닿은 학교 뒷산을 보다

나도 모르게 하는 말이

오-메 단풍 들었네!

학교 뒷산의 꽃들은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피었다 지고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였다가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꽃답게 죽고

무성한 녹음과 열매 맺는 가을

고풍한 뜰에 달빛이 조수처럼 밀려오는 동안

동복에서 하복으로 하복에서 다시 동복으로

교복으로 계절을 알 뿐

밑줄 치고 외우고

남의 말로 조각낸 시를 읽으며

뒷산 한 번 쳐다볼 여유 없이

1년을 보냈구나

얘들아!

수능은 수능이고, 단풍은 단풍이지

너희들의 미래 같은 단풍 든 산을 보아라.

오-메 단풍 들었네!

잘 쓴 시는 아니지만 읽어볼 만한 시의 꼴은 갖춘 것 같다. 그런데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2연에 사용된 말들은 학생들이 배우는 교재에 나오는 유명한 시인(김춘수, 황지우, 이형기, 장만영)들의 작품 속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시인들이 고통스럽게 쓴 시구를 날로 가져다 쓰는 것이 아니냐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창작의 고통'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창작이라는 것은 이미 있는 좋은 말들을 이용해서도 할 수 있는 것이며, 일상생활 속에서 재미있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고통은 생각해 놓은 글감은 없는데 마감 시간이 다가올 때 생기는 것이다.) 창작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문학이라는 것을 매우 거창하고 엄숙한 것으로 보고, 한 구절 한 구절 공들여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은 문학을 자신과는 관련 없는 것으로 선을 긋는 동시에 일상인의 삶과 분리시키는 것이 된다. 창작이라는 것은 누구나, 자유롭게, 즐겁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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