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에 자란다"
기업 경영도 작물 가꾸듯 잘 관리해야
뒤죽박죽 계획 없이 심으면 수확 불편
이윤 창출만을 위한 상품도 고객 외면
얼마 전, TV에서 건물 옥상에 논과 밭을 조성해 작물을 키우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직접 친환경 농산물을 재배해 먹는 사람들을 '도시농부'라 일컫는다고 한다. 사실 나도 작년부터 집 근처에 있는 농원에서 분양받은 자그마한 텃밭을 가꾸고 있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라서인지 은행을 다니는 동안에도 늘 흙냄새가 그리웠다. 언젠가는 고향에 작은 농장을 열고 집사람과 오순도순 밭을 일구며 사는 것이 꿈이기도 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파트 발코니에 상추나 고추를 심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고 수확하는 기쁨도 쏠쏠해서, 주변을 수소문해 작년에 아예 인근 농장의 텃밭을 분양받았다.
그렇게 33㎡(열 평) 남짓한 자그마한 텃밭에서 흙과 바람과 풀들을 마주한 지 1년이 훌쩍 지났다. 작은 텃밭이지만, 그곳은 내게 힐링의 땅이다. 씨앗을 뿌리고, 물과 거름을 주고, 잡초도 뽑으며 부지런을 떨다 보면 사람 속의 시름을 잊게 된다. 텃밭에서 허리를 펴고 하늘을 쳐다보면 흰 구름 덮인 하늘이 너무 예쁘고,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따뜻한 햇살에 행복하다. 올봄에는 상추 세 두둑과 고추 이십 주를 심었더니 한 주에 한 번은 이웃 주민들과 넉넉하게 나눠 먹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속담에 '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에 자란다'는 말이 있다. 작물을 가꾸기 위해서는 늘 부지런해야 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논과 밭을 찾아 뜨거운 햇살에 작물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물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세찬 바람에 작물이 눕지는 않았는지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써야 작물이 잘 자란다. 마찬가지로, 내가 일구고 있는 텃밭의 작은 생명들도 자주 가서 들여다봐야 예쁘게 자라난다. 바쁘다는 핑계로 며칠 동안 가보지 않으면 그새 이름 모를 잡초들이 삐죽 올라와 있고, 작은 생명들도 거친 낯빛을 하고 있다.
기업을 경영하는 것도 작물을 가꾸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매일같이 잡초를 뽑고 물을 주듯, 기업 역시 늘 고객의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관리를 해야 한다. 은행장 시절, 이러한 생각으로 매일같이 전국에 있는 거래처들을 찾아다녔다. 현장에서 고객의 목소리를 듣고 필요한 부분들을 돕기 위해 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더 적극적으로 고객들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함께 고민해 볼걸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더라면 고객들의 삶이 좀 더 윤기 있고 풍요로워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또, 작년 텃밭에 처음으로 씨를 뿌릴 때, 고추, 오이, 가지, 방울토마토 모종을 사다 뒤죽박죽 계획 없이 심어 수확을 하며 불편했던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작물별로 성장 환경이 다른데, 그저 많이 심어야겠다는 욕심에 한 실수였다. 그래서 올해는 각 작물별로 구역을 나누고, 씨앗도 시기별로 잘 구분해 심었더니 수확량이 확실히 많이 늘었다. 고객들 역시 각각 서로 다른 니즈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무시하고 무조건 이윤 창출만을 목적으로 상품을 출시한다면 고객은 외면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은행장에 취임하고 가장 먼저 했던 것이 상품 라인업 정비였다. 당시 출시되어 있던 상품 중 수익성이 떨어지거나 타깃 고객이 불분명한 상품들은 과감히 솎아냈다. 그리고 기존 상품들과 새로 출시되는 상품들은 고객이 필요한 서비스와 상품을 취사선택할 수 있도록 패키지 상품으로 통합하거나 맞춤형 상품으로 출시해서 고객의 니즈를 최대한 충족시킬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내놓은 상품들은 고객의 만족도도 굉장히 높고, 꾸준한 수익을 내는 은행의 효자상품이 되었다.
처음에는 소일거리 삼아 시작한 텃밭 가꾸기가 이제는 내게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소중한 시간들이 되었다. 벌써부터 내년에는 텃밭에 무엇을 키워볼지 고민 중이다. 내년에는 더 다양하고 쓰임새 많은 작물들을 키워볼 생각이다. 아직은 부족한 게 많고 서툰 초보 도시농부이지만, 이렇게 텃밭에서 삶의 지혜를 하나하나 배우다 보면 언젠가는 그럴듯한 농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순우: 1950년 경주 출생. 대구고'성균관대 법학과 졸.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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