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길 험난하여라. 길은 여러 갈래인데, 지금 어드메뇨. 큰 바람에 거친 파도 헤칠 날 있으리니, 구름 돛 곧게 달고 푸른 바다를 건너리라'(行路難 行路難 多岐路 今安在 長風破浪會有時 直掛雲帆濟滄海). 당나라의 시인 이백(李白)은 일찍이 인생행로의 어려움을 이렇게 읊었다. 꿈을 펼치고 싶으나 간신배가 득세하니 험난한 삶에 대한 장탄식과 호방한 기개를 이렇듯 불멸의 명시로 남긴 것이다.
개인적 행로난의 확대는 곧 국가의 명운과도 결부되기 마련이다. 요즘 우리 정치판을 보고 한숨을 쉬는 국민이 많다. "도대체 왜 저것밖에 안 되느냐"고 반문한다. 차라리 '5공' 시절이 그립다는 막말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정말이지 이런 소인배의 정치로는 나라와 겨레의 앞날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애써 이루어 놓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마저 다 까먹겠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숱하다.
한 나라의 정치적 품격은 그 국민적 수준의 반영이라고 보았을 때, 우리는 어떤 항변을 내놓을 수 있을까. 사실 우리는 좀 특별한 민족이다. 공통분모를 갖췄을 때는 뜻밖의 힘을 발휘하지만, 쉽게 분열되는 단점을 지녔다. 유별난 평등의식 때문이다. 그것은 민족의 형성을 상징하는 신화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칼을 들고 내려와서 정복으로 일관하는 살벌한 일본의 신화와는 사뭇 다르다.
단군신화의 환웅은 농업을 중시하며, 도망가는 호랑이 처녀를 두고 곰녀를 맞이한다. 북방계의 기마민족과 남방계의 농경민족이 충돌하면서 새로운 국가와 민족을 형성하는 과정이 연합공동체적인 성격을 지녔음을 시사한다. 그러니 고구려와 고려시대에 귀족정치가 꽃을 피웠을 때는 수십만 대군을 앞세운 중국 왕조의 공격도 거뜬히 막아 냈으며, 몽골의 침입과 왜적의 침략 때는 왕이 도망가고 없어도 맨몸으로 강산을 지켜낸 것은 민중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지칠 줄 모르는 독립운동과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낸 원동력도 여기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평등의식은 여러 갈래의 주장과 이익을 아우르는 정치 체제나 리더십이 없을 때는 분열의 양상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 사례가 조선 중기 이후의 당쟁이다. 그러잖아도 일도양단의 피비린내 나는 칼의 문화에 익숙한 일본인의 눈에는 학문과 여론을 중시하는 조선의 사림 체제나 붕당정치가 분열과 낭비로만 보였을 것이다.
아무튼 당쟁은 망국의 원인이 되었으며, 식민사관의 호재로 딱 걸린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조선 후기의 당쟁은 공론을 벗어난 개인의 이해관계로 확대하며 치졸한 측면을 드러낸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당쟁도 오늘날의 정치판처럼 이렇게 유치하고 극단적이지는 않았다. 조선의 선비는 유교적인 학문과 도덕적인 수양을 갖추고서야 세상에 나서려 했으니, 나름대로의 의리와 명분은 있었던 것이다.
요즘처럼 당명을 밥 먹듯이 바꾸고, 돈으로 사고파는 이합집산의 막장 정치는 아니었다. 오늘의 이 저급한 정치판을 양산한 우리가 당쟁을 매도할 자격이나 있을까. 가진 자들의 끝없는 탐욕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못 말리는 생떼가 횡행하는 사회를 한데 아우를 수 있는 정치는 요원한 것인가. 사물놀이판의 상쇠와 같은 정치력이 필요한데, 제 잇속만 챙기고 제 집단의 이익에만 눈이 먼 정치인들이 똑똑한 국민의 한바탕 큰 놀이판을 깨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에게는 제 잘난 지도자는 필요 없다. 잔머리로 하는 정치는 소용없다. 이백이 살았던 시대처럼 간교한 인간들이 득세하고 가슴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한숨을 자아내는 시절은 개인도 국가도 행로난이다. 역시 당나라 시인이었던 백거이(白居易)는 '태항로'(太行路)라는 시의 말미에서 '인생길의 어려움은 물에도 없고 산에도 없고, 다만 엎치락뒤치락하는 인정 사이에 있다'(行路難 不在水 不在山 只在人情反覆間)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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