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하회 충효당 길사(吉祀)

현대화된 요즘에 비하면 과거의 제사는 양적으로나 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다. 선현들께서는 철이 바뀌어 새 곡식이 나오면 가묘에 올리고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모시면서 진정 슬퍼하고 뼈에 사무치도록 애통해하며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효심은 현대인들과는 깊이가 다르다. 유구한 전통이 현대화의 물결 속에 모두 묻혀버리고 이젠 설과 추석의 차사(茶祀'차례), 그리고 기제사만이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으나 이 또한 제사를 주재하는 사람의 의향에 따라 주관적인 해석으로 변형되기 일쑤이니 전통을 유지하기란 참 어려운 것 같다.

많은 제사 중에서 자주 지내는 제사가 아니면서도 현재까지 전통을 이어 온 제사가 있으니 바로 길사(吉祀)이다. 우리 선조들은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라 4대 봉사의 의무를 다해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마지막 담사를 지내면 상례가 종결된다. 상례를 종결한다는 것은 상주의 의무를 다했다는 뜻이다. 길사(吉祀)의 '吉' 자는 선조의 죽음을 슬퍼하는 상례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이다.

흔히들 길사를 일컬어 평생 한 번 보면 다행이라며 희소성을 강조하곤 한다. 각종 제사가 고인의 뜻을 기리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지만 길사는 말 그대로 즐거운 마음으로 축하와 덕담을 주고받으며 지내는 제사라는 점도 일반 제사와는 차이가 있다. 길사에는 많은 후손 및 문중원 그리고 선조의 세의(世誼)를 앞세운 후예들이 망라하여 자의적으로 참석한다. 길사에 소요되는 경비는 문중에서 부담하며 당일에는 문중의 큰 축제가 되고 이를 통해 문중의 정체성과 긍지, 자부심을 고취하기도 한다.

종부(宗婦)는 길사의 꽃이다. 종손(宗孫)과 더불어 선조의 봉제사를 담당하는 막중한 책임을 선포하는 자리이다. 종부는 화려한 활옷을 곱게 차려입고 연지, 곤지에 화관을 쓰고 좌우에 시자의 보조를 받으며 제청으로 나아간다. 화관은 여러 가지 보석으로 꾸며 예식용으로 사용하던 관이다. 종부의 예복으로 원삼과 족두리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활옷과 화관이 좀 더 화려하다. 활옷에는 많은 수가 새겨져 있으며 이는 행운과 권위, 부부애, 영생을 담고 있다고 한다.

오는 10월 30일은 세계문화유산 하회마을 충효당(忠孝堂)에서 40여 년 만에 길사를 행한다. 서애 류성룡의 15세손인 류창해 씨는 지난 9월 18일 부친 류영하 공의 기년상((朞年喪)을 마쳤다. 서애와 4대 선조에게 차례로 충효당의 새 종손이 되었음을 고유하는 제사이다. 서애는 4대를 벗어나지만 나라에 충성한 공(功)으로 불천위(不遷位)로 지정돼 지금도 종택의 묘우(廟宇)에 신주가 모셔져 있다.

당일 길사는 사당에 위치한 신주가 충효당 사랑대청으로 출주(出主)한다. 사당이 좁은 관계로 많은 참제관이 함께 참사하기 어려워서다. 서애의 신주를 필두로 4대조의 신주가 자리하며 종손이 초헌례를, 종부가 아헌례를, 외빈이 종헌례를 행하는 것으로 고유의 절차가 이어진다. 1천여 분의 내'외빈이 참석하며 넓은 외곽에는 현대 장비가 준비되어 안으로 들지 못하는 관광객에게도 행사 장면이 중계될 예정이다. 제사를 마치면 영하 공의 신주는 가묘(家廟)로 새롭게 들어가고 4대를 벗어난 5대조 신주는 매주(埋主)한다. 사당에는 고조부까지 4대만의 신위를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조들께서 5천 년을 이끌어 온 유구한 문화와 전통이 현대화의 물결 속에 하나, 둘 사라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의 전통문화를 앞장서서 지켜가는 곳은 씨족사회를 앞세운 종가(宗家)와 문중(門中)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