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요."
◆연이은 사업실패로 힘든 삶
상현 씨는 여태껏 단 하루도 편히 잠든 적이 없다. 어려운 형편으로 중학교 때부터 밖에서 돈을 벌었다. 몸이 아픈 아버지와 청소일을 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상현 씨도 어린 시절부터 음식점 배달, 일용직 노동,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생계에 보탬이 되어야 했다.
그러다 20대 중반 큰 꿈을 품고 직업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일용직을 전전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하려면 더 배우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디자인을 전공한 상현 씨는 졸업 후 바로 인테리어 업체에 취직했다.
10년간 인테리어 업계에 종사하면서 한때는 꽤 잘나가는 인테리어 전문가로 인정받기도 했다. 사람이 좋고 일을 꼼꼼하게 잘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직접 매장을 차릴 준비까지 했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동네 인테리어 업체 대부분이 문을 닫았고 상현 씨도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막히니 앞으로 살길이 막막했어요. 할 수 있는 게 장사밖에 없어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모두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상현 씨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대학가에 당구장, 식당을 연이어 열었다. 유일한 재산이었던 전세보증금까지 탈탈 털어 다시 한 번 재기에 도전했지만 하는 것마다 2년을 넘기지 못했다. 40대 초반에 빚더미에 앉은 상현 씨는 다시 셋방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젊었을 때는 제가 좋아하는 일만 열심히 하면 돈은 절로 따라올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어요."
◆인큐베이터에서 지내는 세쌍둥이 딸
암흑 속에 살던 상현 씨에게도 좋은 날이 찾아왔다. 지인의 소개로 베트남 출신 한 여성을 만난 것이다. 어려운 형편으로 결혼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있었던 만큼 자신에게 온 아내가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올해 초 세쌍둥이가 부부에게 생겼다.
작은 체구인 아내는 임신 초기부터 심한 입덧과 두통으로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결국 임신 5달 만에 유산 증세가 있어 병원에 입원했다. 부산에서는 세쌍둥이 모두 조기 출산할 경우 인큐베이터 치료는 불가능하다고 해 아내와 짐을 싸 대구의 병원으로 왔다.
남편은 일도 하지 못한 채 병원 옆 모텔에 머물며 아내를 밤낮없이 돌봤다. 하지만 8개월도 안 돼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아기들은 결국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그동안 아내의 입원비와 조산을 막는 약값에 들어간 돈은 약 1천만원. 여기에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들의 치료비를 더하면 2천만원이 훌쩍 넘는 비용이 필요한 상황이다.
가장 큰 걱정은 둘째 딸이다. 둘째는 태어날 때부터 폐와 심장의 기능에 문제가 있었다. 병원에서는 심장 박동이 잦고, 무호흡 증세가 있어 인큐베이터에서 나오면 수술을 위해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아내가 입원한 후 상현 씨는 하던 일을 그만뒀다. 도와줄 친정, 시댁 식구가 없고 간병인을 구할 형편이 안돼 자신이 직접 아내 간병에 나섰기 때문이다. 사업 실패 후 도움받을 곳 없이 대출로 지금까지 버틴 상현 씨는 이제 이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다.
"세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현실을 생각하면 가장으로서 어깨가 무거워요. 하지만 남들보다 늦게 가정을 꾸린 만큼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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