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폭염 더위에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이 지친 기색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빨리 휴가를 가서 시원한 계곡 물로 뛰어들고 싶은 어느 날이었다. 출동대기를 하고 있다가 오전 폭염순찰을 다녀와서 쉬고 있는데 출동 1건이 접수되었다.
산격동의 한 유치원 앞에 있는 전봇대 옆에 사람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였다. 현장에 서 할아버지 한 분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해 보니 더위 때문인지 얼굴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고 좌측 팔꿈치 부위에 찰과상 및 안면부에 가벼운 찰과상이 있었다. 또 할아버지는 어지러움을 호소했고 거동 또한 불편한 상태인 것을 확인했다.
응급처치 후 할아버지께 어떻게 쓰러졌는지 물어보니 "볼일 보고 집에 가던 중에 넘어졌다 아이가" 하셨는데. 다행히 많이 다치지 않아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했다.
그런데 병원에 도착해서 병원 침대에 눕히려는데 난데없이 할아버지가 "내 보따리 내 놓으라"면서 우리 대원에게 고함을 치시는 것이 아닌가! 대원들은 당황스러웠다. 생각을 해보니 나는 현장에서 물건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후배 대원에게 물어봤는데 주위에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어쩌지' 하고 있는데 완강하신 할아버지는 재차 "보따리 내놔!"라고 말씀하셨다.
나와 대원들은 '현장에서 환자평가와 응급처치 때문에 주위에 뭐가 있었는지 몰랐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구급일지를 다 적고 난 뒤 얼른 현장으로 달려갔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도록 전봇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보따리는 보이지 않았다. 이래선 도저히 못 찾겠다 싶었다. 나는 다시 그 옆쪽 골목길로 가서 찾고 후배 대원은 위쪽 골목길로 가서 찾아보기로 했다.
옆 골목길 15m쯤 떨어진 곳 그랜저 승용차 트렁크 위에 검은 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직감적으로 '이것이 할아버지가 찾던 물건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 봉지를 들고 대원을 불러 이송한 병원으로 가서 할아버지께 드렸더니 할아버지 것이 맞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보따리를 찾아 기뻐하셨다. 할아버지의 환한 미소를 보니 옛 생각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2003년쯤 동부소방서 고속 구급대에서 근무할 당시 한 할머니를 이송하고 난 뒤에 있었던 일이다. 그 할머니가 사무실로 전화해서는 "복권이 들어 있는 보따리를 구급차에 두고 내렸다"는 것이었다. 그때도 찾아봤지만 할머니의 보따리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가 '다른 데 두고 온 것이 아닌가?' 생각했고 다시 전화를 해 정중하게 할머니께 설명을 드렸다. 그 뒤로는 찾으셨는지 연락이 없었다.
2005년 동촌119안전센터에 근무할 때에도 건축 현장에서 근무하시는 분이 구급차를 이용한 뒤 지갑을 잃어 버렸다는 연락이 왔다. 그 지갑 안에는 거래업체에서 받아야 할 돈 목록이 들어 있어서 꼭 좀 찾아야 한다고 다급하게 전화가 왔다.
그때는 야간에 전화를 받았고, 우리는 플래시를 들고 구급차 안을 샅샅이 뒤졌다. 들것을 꺼내고 찾고 있던 중 구급차 들것과 비품상자 사이 좁은 공간에 지갑이 떨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바로 환자에게 전화를 하니 얼마나 기뻐하던지 밝은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내일 사람을 동촌안전센터로 보내겠습니다"는 말을 들은 뒤 전화기를 놓을 수 있었다.
현장 구급활동을 20년간 하는 동안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지만, 이번 할아버지의 일을 겪고 나니 현장에서 환자평가와 응급처치로 인해 주변을 살피지 못하면 환자의 귀중한 재산을 놓칠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동부소방서에서 근무할 때에는 유실물을 찾아주기 위해 유실물 배낭을 각 구급차에 배치하고, 교통사고 등 현장에 출동하면 환자를 구급차 안으로 이송한 후 사고 차량 안에있는 귀중품과 유실물을 배낭에 모두 담아서 병원에 이송한 다음 유실물 보관낭도 같이 인계하고 월간 보고를 한 기억이 난다.
그때는 사소한 것이라도 시민들에게는 중요한 귀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들고, 앞으로 현장에서 귀중품 등 소지품에도 관심을 갖고 세심하게 확인하여 사각 민원을 해결하는 참된 봉사 구급대원이 되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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