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사랑하고/ 마음대로 떠나가신/ 첫사랑 도련님과/ 정든 밤을 못 잊어.' 1960년 톨스토이 원작을 한국에서 리메이크한 영화 '부활'의 주제곡으로 등장한 이래 여전히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는 '카츄샤의 노래' 일부이다. 노래 제목에 등장하는 카츄샤는 누구나 아는 것처럼 부활의 여주인공 이름이다. 안나 카레리나, 나타샤 등 톨스토이의 대작에 등장하는 쟁쟁한 여주인공들을 제치고 카츄샤가 이처럼 한국 대중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부터 정확히 100년 전인 1915년 11월 9일 일본 유명 극단이 톨스토이의 부활을 지금의 서울인 경성의 용산에서 공연하였다. 이 연극은 이미 일본에서 1914년 3월 처음 공연된 이후, 해외 공연 포함 총 444회나 공연할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특히 연극 중 삽입된 카츄샤의 노래는 당시 레코드판이 2만 장이나 팔릴 정도였다. 올해의 유행어 선정에 일가견이 있던 일본인들이 1914년 일본의 최고 유행어로 '카츄샤'를, 최고 유행가로 '카츄샤의 노래'를 선정한 것을 보면 그 인기의 정도가 대략 짐작이 된다.
당시 일본 대중을 강타하던 금니(黃金齒) 유행까지도 잠재운 연극 부활의 인기는 카츄샤와 네훌류도프의 사랑에 중점을 둔 탄탄한 구성과 카츄샤의 노래(60년대 한국의 '카츄샤의 노래'와는 다른 버전)에 힘입은 바 컸다. 톨스토이의 의도는 아랑곳없이 통속적 사랑 이야기로 재탄생한 부활의 인기는 조선에도 전해져 조선 극단의 연극 공연으로 이어졌고, 애처로운 노래와 함께 조선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사랑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안나 카레리나처럼 유부녀의 불륜적 사랑도 아니었고 권선징악적 내용까지 갖추고 있으니 조선의 전통적 정서에 부합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카츄샤의 인기에 힘입어, 박현환이 부활을 해당화(1918)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여 조선에 처음 소개한다. 번역이라고는 하지만 조선 대중의 취향과 수준에 맞게 사상적인 내용들은 제거하고 권선징악과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축약 형태였다. 연애물을 너무나 선호하는 한국 대중들 때문에, 한국 드라마는 법정에서도 사랑을 하고, 병원에서도 사랑을 하고, 과학실험실에서도 사랑을 한다는 하나의 정석이 이 시기에 이미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 대중문화가 일본 대중문화 시장을 강타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일본 대중문화의 역사에 대해 한번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일본은 100년 전, 대중적 호응을 얻기 위해 톨스토이의 심오한 저작인 부활을 통속 멜로물로 둔갑시켰지만 그 시기 일본의 또 한쪽에서는 톨스토이 관련 전문적 연구 잡지(1916)가 발행되고 있었다. 또한 당시 일본을 대표하는 문학단체였던 시라카바파의 작가들이 톨스토이 사상에 깊은 감화를 받고 작품 창작에 임하고 있었다.
대중의 입맛에 맞춘 가볍고 자극적인 일본 대중문화의 기저에는 이처럼 깊고 심오한 사상이 지속적으로 축적되고 있었다. 일본 대중문화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 힘을 아는 순간, 우리 대중문화는 한때의 유행을 넘어 비로소 일본 대중문화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 것이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한덕수 "24일 오후 9시, 한미 2+2 통상협의…초당적 협의 부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