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름다운 패자 택한 류중일의 용기

경기장 남아 두산 선수단에 박수…"2011년 소프트뱅크에 감동 받아, 완패했지만 내년 챔피언 도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에 패한 삼성 라이온즈 선수단이 지난달 3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5 프로야구 시상식에서 두산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에 패한 삼성 라이온즈 선수단이 지난달 3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5 프로야구 시상식에서 두산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가을 야구의 마지막 날, '푸른 사자'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삼성 라이온즈는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의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실패를 맛본 류중일 감독의 마지막 용기 덕분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 서울 잠실야구장 중앙출입구 앞에는 삼성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팬들이 몰려들었다. 충격적인 4연패로 한국시리즈를 마무리했지만 이미 5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을 달성한 삼성을 축하할 준비가 돼 있었다. 하지만 경기장 바깥의 팬들은 장내에서 쏟아진 큰 함성에 한 번 더 놀라야 했다.

류 감독을 비롯한 삼성 선수단은 이날 공식 시상식이 이어지는 동안 3루 더그아웃 앞에 도열해 두산 선수단에게 박수를 보냈다. 선례대로 조용히 그라운드를 빠져나오지 않고, '아름다운 패자'의 모습을 보여주자는 류 감독의 전격적 결정이었다.

삼성 관계자는 "2011년 아시아 시리즈에서 일본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꺾고 우승할 당시 상대 선수들이 경기장에 남아 삼성을 축하해주는 모습에 류 감독이 큰 감동을 받았다"고 이날 이벤트의 배경에 대해 귀띔했다. 그해 감독에 취임하면서 국내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4연패, 2014 아시안게임마저 석권하면서 한 번도 그럴 기회가 없었다는 설명이었다. 삼성 선수들은 시상식이 모두 끝난 이후에야 짐을 꾸려 대구행 버스에 올랐다.

하지만 류 감독의 속마음이 편할 리는 없다. 선수 시절 한 번도 챔피언 반지를 갖지 못한 그는 경기 직후 "프로로서 2등은 비참하다. 통합 5연패에 실패해 팬들에게 죄송하다"며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경기 직전 더그아웃을 찾아 승리를 기원한 옛 동료, 릭 밴덴헐크(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오늘 던져주면 안 되겠나"라며 필승 각오를 다졌던 그다.

삼성이 내년에 어떤 성적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해외 원정 도박 파문을 일으킨 임창용'윤성환'안지만의 거취가 현재로선 불투명한 데다 삼성은 새로운 홈구장에도 적응해야 한다. 여기에다 삼성 구단은 삼성그룹 내 제일기획에 합병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어 어수선하기만 하다.

그러나 승자의 세레모니를 지켜봐야 하는 아픔은 류 감독에게 절치부심의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류 감독 역시 "올해는 완패했지만 내년에 팀을 잘 꾸려서 챔피언에 다시 도전하겠다"고 다짐했다. 내년 봄, 시즌 개막까지는 넉 달이 남아 있다. 삼성 선수단은 일주일의 휴식을 한 뒤 7일 경산볼파크에 다시 모여 새 출발을 위한 각오를 다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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