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미화 칼럼] '저승 맛'

10·28 재보선 24석 가운데 2석 건져

'8% 승리'만 건져 1야당 체면 바닥

정치적 비상사태 못 느끼면 지옥행

"죽어야 저승 맛을 알겠는가."

경북 울진군다(기초의원) 선거구를 포함한 전국 10개 시도'시군구에서 24명의 기초단체장'광역의원'기초의원을 뽑은 10'28 재보선에서 새누리당과 무소속에 22석을 뺏기고, 고작 두 석만 챙긴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를 향해 조경태(부산사하을'3선) 의원이 날린 돌직구다.

부산권 조경태 의원뿐 아니다. 호남권 박지원 의원은 문 대표가 "재보선 결과는 저희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더 겸허하게 노력할 일입니다"라며 애매모호하게 넘어가려 하자 '책임지고 사퇴를 결단하라'고 했고, 수도권 안민석 의원은 총선 앞 민심의 바로미터인 지선에서 완패하고도 꾸물거리는 문 대표를 향해 스스로 결단하라며 사퇴를 압박했다.

이뿐인가. 인천의 최원식 의원을 필두로 서울 최재천 의원, 경기 정성호 의원, 부평 문병호 의원 등 반(反)문 비주류 의원들은 '정치혁신을 위한 2020모임'을 출범시키겠다고 나섰다. 자진사퇴를 하지 못하는 문 대표로서는 좌불안석이다. 거듭되는 선거 패배 공포를 안게 된 새정치연합의 앞날에 한치도 알 수 없는 격랑이 기다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 국가 그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가 극심하게 대립하는 '정치적 양극화'의 나라이다. 만만찮은 동북아 정세 속에 일치단결해서 나아가도 모자랄 판에, 보수와 진보가 사사건건 싸우면서 국민들에게 걱정거리를 안기고 있다. 진보는 보수가 꼴도 보기 싫고, 우파는 좌파와 말도 섞기 싫은 것이다.

지난 2000년,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양당은 진보'보수로 나뉘긴 했어도 이념적 성향이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중도 주변에 엇비슷하게 분포했다. 불과 10여 년 뒤인 2012년, 새누리당은 훨씬 보수적으로, 민주통합당은 더욱 진보적으로 변했다. 2015년 현재, 보혁(保革) 거리는 더 벌어지고 있다.

그러니 양당은 상대가 하는 것은 무조건 못마땅하고 위험하고 끔찍스럽다. 이런 정치적 불신은 정당 간 혹은 정치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유권자들도 똑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요즘 집안 모임이든, 직장 회식이든, 학교 동창회든 어디서나 정치 이슈를 화제로 삼는 것은 금물이다. 지지 정당이 다르고, 보혁 입장 차가 뚜렷하여 자칫하면 큰소리로 이어진다. 나만 옳고, 제 지지정당만 옳다고 믿는다. 부모 자식 간에 얼굴 붉힐 일도 생기고, 세대 간에 꼰대-천방지축이라며 손가락질한다.

한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누린 마이클 샌델('정의란 무엇인가' 저자)을 능가하는 사상가로 주목받는 조너선 하이트(긍정심리학자, 책 '바른 마음'의 저자)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사회가 양극화되는 데는 성별'종교'소득'학력'인종 등 여러 변수가 작용하지만 정당 변수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고 했다. 즉 정당 변수는 성별'소득 등 변수보다 많게는 3배 심각한 양극화로 끌고 간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지역'세대'빈부'노사 등 요인 때문에 분열 현상을 보이지만, 지지정당이라는 변수야말로 가장 심각한 '정치적 양극화'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연전연패다. 애달프다. 오죽하면, 당 내부에서 '죽어야 저승 맛을 알겠는가'라는 큰소리가 터져 나오겠는가. 물론 그 일차적 책임은 문재인 대표에게 있겠지만, 더 큰 책임은 지금까지 걸어온 새정치연합의 철학과 직결된다. 즉 2000년대 들어 새천년민주당→민주통합당→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으로 간판 바꿔 달기에 바빴지, 진보정당이 중요하게 여기는 배려'공평'자유를 기반으로 한 정책을 구현하기 위해 성장'권위'전통을 중시하는 보수 여당과의 밀당을 거부했다. 사사건건 발목 잡고 트집 잡기에만 열을 올렸기에 지지자조차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새정치연합은 이제라도 정치적 비상사태임을 직시하고, 소인배의 틀을 벗어던져야 산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 저승 맛을 보게 될 수 있다. 당장 내년 총선에서부터.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