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총칼보다 무서운 '혀'

우여곡절 끝에 제20차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3년 4개월 만에 진행됐다. 지난달 20일부터 25일까지 69가족 389명은 1, 2차로 나뉘어 금강산에서 꿈에도 잊지 못했던 얼굴들을 마주했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혈육의 정을 나눈 만남은 눈물 없이 볼 수 없었다. 이산가족 상봉 희망자는 12만9천여 명에 달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가족이 서로 만난 상봉자는 모두 합쳐 1만2천여 명에 불과하다. 만나자마자 이별하는 이산가족들의 아픔도 아픔이지만, 언제 내 자식 내 형제의 얼굴이나마 볼 수 있을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이산가족들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우리는 언제까지 내 땅 내 형제를 만나지 못하고, 우리 안에 갇힌 짐승이 되어야 하는가?

북한은 휴전 이후 515차례나 크고 작은 휴전 협정을 위반했다. 특히 지난번 휴전선 지뢰 폭발 도발로 우리 대한민국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굴욕을 당해야 했다. 이에 우리 군은 휴전선 일대 11곳에 20~30㎞까지 들리는 대형 확성기를 설치하고,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이 지역은 민간인보다 북한군 주둔이 많은 지역이다. 방송은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최고 존엄인 김정은의 오점을 파헤치고, 잘사는 우리나라, 북한의 실상, 한류스타 노래 등을 통해 심리전에 들어갔다. 무자비한 숙청과 철저한 쇄국정책으로 망해가는 그들에게 엄청난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휴전선 일대의 방송을 통해 '혀'의 힘을 여지없이 발휘한 것이다.

총칼보다 무서운 것이 펜이란 것을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총칼보다 무서운 것이 혀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군의 사기가 떨어지면 그 전쟁은 진 것과 마찬가지다. 제갈공명은 고요한 밤에 슬픈 피리를 불어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렸고, 칭기즈칸은 철저한 전리품 분배 전술로 동서양을 강타했다.

당황한 북한은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선전포고를 했다. 우리 군과 북한군은 휴전 이후 최고의 위기 상황으로까지 치달았으나, 방송 15일 만에 북한이 처음으로 '대한민국' 존칭을 써가며 꼬리를 내렸다. 결국 확성기 방송의 힘, 즉 혀의 힘이 최후의 승리를 쟁취한 셈이다.

평소에 핵무기를 앞세우고, 미사일을 발사하는가 하면 연평도 포격, 천안함 폭침 등 전쟁위기를 조장하던 그들이 세 치밖에 안 되는 혀 앞에 굴복하고 말았다. 평소에 귀하게 생각하지 않은 입속의 혀가 이산가족 상봉, 고위급회담, 불가침조약 등 평화통일의 지름길을 만들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75세의 황병서가 군복과 어울리지 않는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로 둔갑하여 무박 4일간 웃음을 띠며 지속한 대화이다. 총 한 방 쏘지 않고, 웃음과 대화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는 것은 총칼보다 더 무서운 혀(확성기 방송과 확고한 원칙을 바탕으로 한 대화)가 제대로 작동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부모 배 속에서 "응아~" 하고 태어나 유언을 남길 때까지 하는 것이 말이다. 이 말은 혀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요, 그 실천은 다이아몬드다. 그러나 부르짖어야 할 곳에 부르짖지 않으면 시궁창에 처박힌 돌덩이보다 못하다. 그 역할을 휴전선 확성기 혀가 해낸 것이다.

만약 북이 약속을 위반하면 휴전선의 확성기는 또 울려 퍼질 것이다. 혀가 평화와 통일의 파수꾼이 되고, 지름길이 되기를 온 국민은 바라고 원하고 있다.

시대가 영웅을 낳는다. 우리나라 역사에 길이 남는 통일의 영웅이 탄생하기를 빈다. 그 0순위는 김정은 국방위원장이다. 한반도 평화와 이산가족들의 눈물을 씻어줄 말을 김정은 위원장의 혀에서 기대해 본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