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서울말과 방언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 고무의 딸…'(여우난골족), '미역오리 같이 말라서 굴껍지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통영), '몬지가 겹겹이 앉은 목각(木刻)의 액(額)에 나는 열 살이 넘도록…'(정문촌), '강낭밭에 이슬이 비온듯 하는…'(박각시 오는 저녁), '거리로 들어가면 무엇보다도 몬저 주류판매업이라고 써붙인 집으로…'(구장로), '백중날에는 새악시들이…물팩치기 껑추렁한 치마에…'(칠월백중).

평북 정주가 고향인 백석은 지금은 길상사가 된 서울의 옛 유명 요정 대연각의 여주인 길상화(본명 김영한)의 연인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보다도 그는 우리 문학사에서 독특한 업적으로 더 이름을 얻었다. 바로 시 작품에 쓴 다양한 방언과 사투리, 옛말 덕이다. 이 때문에 그의 작품은 이해하기가 힘들지만 그렇다고 표준말로 바꾸면 시 맛은 없어져 그의 시는 더 대접받는다.

위 작품의 '아배'(아버지), '고무'(고모), '껍지'(껍질), '몬지'(먼지), '강낭'(옥수수 강냉이), '몬저'(먼저), '물팩'(무릎)은 경상도 방언이다. 그는 남쪽 경상도에서 북쪽 함경도, 만주까지 여러 곳의 방언과 사투리, 옛말을 작품에 무수히 남겼다. 물론 가장 사용 빈도 높기는 그의 고향인 평안도 말이었다.

'정본 백석 시집'이란 책에서 고려대 고형진 교수는 "백석 시에서는 방언과 고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모두 표준어로 바꾸면 시의 맛이 사라지고 만다"며 그의 현대시 성과로 "모국어의 확장"을 꼽았다. 또 "그의 시는 우리말의 보고"라며 "(김)소월이 우리말의 선율을 아름답게 가꾼 시인이고, (정)지용이 우리말을 조탁한 시인이라면 백석은 우리말을 채집한 시인"이라 평했다. 고 교수는 아울러 "우리의 낱말 밭에서 주옥같은 말들을 캐내어 시를 쓴 최초의 시인이 백석"이라 칭송했다.

지금은 '서울말'이 표준어라 서울말 아닌 방언, 사투리는 푸대접이다. 하지만 문학에서는 방언과 사투리의 힘은 여전하다. 지역의 독특한 정서를 잘 드러내서다. 박목월이 '오라베' '아베' 같은 향토색 짙은 사투리를 쓰는 등 많은 작가가 이를 고집하는 이유도 같다. 국어학자들이 최근 대구에서 '국립방언연구원' 설립 모색을 위해 모였다. 모든 것이 서울 중심인 요즘, 방언과 사투리도 대접받는 세상이 오길 기대하기에 그들의 노력이 좋은 결실을 보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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