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을 받은 환자에게 나쁜 소식을 전할 일이 생겼다. 위 내시경에서 이상 소견이 있었고 조직검사 결과 위암으로 판명난 것이다. 건강검진 결과를 보는 자리에서 좋은 얘기보다는 나쁜 얘기가 많이 나오겠지만, 암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하는 건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떤 소식부터 들을래?" 흔히 이런 말을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소식을 전하는 사람의 다수는 좋은 소식을 먼저 전하고 싶다고 했다. 반대로 들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나쁜 소식을 먼저 듣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았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라는 속담처럼 나쁜 소식을 먼저 듣고 좋은 소식으로 완화하려는 심리일 것이다.
건강검진에서 암이 발견된 환자들은 원래 결과를 보는 날보다 날짜를 당겨서 나오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검진 결과가 좋지 않아서 일찍 방문해야 할 것 같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이는 나쁜 소식을 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쁜 의학적 결과들이 마음의 준비 없이 일방적으로 갑자기 전달되었을 때 충격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으로선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캐나다의 의사이자 작가였던 롭 버크만은 나쁜 소식 전하기에 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가 그것을 잘못했을 때 환자와 가족들은 우리를 용서하지(forgive) 못할 것이나, 우리가 잘해낸다면 그들은 우리를 잊지(forget) 못할 것이다."
예전에 미국종양학회에서 의사들에게 나쁜 소식 전하기가 어떤 점에서 어려운지를 물은 적이 있다. "어떻게 환자의 희망을 깨지 않으면서 진실을 말해줄까?"와 "나쁜 소식을 들은 환자의 반응과 감정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등이 가장 어렵다는 답변이 많았다. 극단적인 표현이나 근거 없는 낙관보다는 솔직하게 사실을 전하고 환자가 수용하도록 도우면서 함께 치료 계획을 세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평균 수명까지 생존할 경우 남자는 3명 중 1명, 여자는 4명 중 1명꼴로 암에 걸린다는 통계가 있다. 한국인의 사망 원인 1위가 암이고, 암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쏟아지다 보니 예전에 비해 암에 대해 얘기를 하기가 좀 쉬워졌다. 의학의 발전과 의료정보의 대중화가 암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어느 정도 걷어낸 듯이 보인다. 그래서 암 진단 통보를 했을 때 환자들의 반응은 담담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의사인 내가 감정 조절을 못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환자의 충혈된 눈이나 자녀의 오열 앞에서 들키지 않게 눈물을 찍어내느라 고생하기도 한다. 가을 탓인지,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인지 눈물이 많아진 것 같다. 청명한 가을날, 눈물 훔치며 전하는 나쁜 소식보다는 같이 웃으며 전할 수 있는 좋은 소식이 넘쳐 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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