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패물폐지부인회 구성원은 '정운갑 모 서씨, 서병규 처 정씨, 정운화 처 김씨, 서학균 처 정씨, 서석균 처 최씨, 서덕균 처 이씨, 김수원 처 배씨'로만 불려왔다. 대구여성가족재단이 지난 8월 이들의 이름을 찾아주자는 운동을 제안한 것은 이제라도 여성들의 이름을 찾고 그들의 역할을 제대로 조명하자는 취지였다.
◆패물폐지부인회를 주도한 정경주 여사
이번 대구여성가족재단의 연구를 통해 드러난 6명의 인물 중 패물폐지부인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서병규 처 정씨'로 표현된 정경주(鄭瓊周, 1866~1945) 여사로 보인다. 일부에서 최경주로 잘못 알려졌지만 이번 연구 과정을 통해 정경주임을 확인했다. 정경주 여사는 실질적으로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를 조직하고 이끌었던 리더이자 취지문을 직접 작성한 인물로 짐작된다. 최세정 대구여성가족재단 책임연구원은 "서학균, 서석균(서철균), 서덕균이 정경주 여사의 세 아들임을 고려할 때 정경주 여사는 세 며느리들과 함께 뜻을 모아 취지문을 발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정경주 여사의 고손자 서찬주 숙명여대 교수는 "할머니(정경주의 손부)의 말씀에 따르면 국채보상운동 당시 여자들이 나와서 줄연설을 했다고 한다. 특히 정경주 할머니는 한마디를 해도 호소력 있게 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 취지문도 정경주 할머니가 쓰셨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정경주 여사의 고손자인 서헌주 미국 버지니아주 목사는 "남편이 국채보상운동에 투신해 고군분투할 때 자부들과 함께 자발적으로 뛰어든 결정도 이 어른이 하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온 집안이 함께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서
정경주 여사의 세 며느리는 정말경, 최실경, 이덕수이다. 정경주 여사는 슬하에 3형제를 두었는데, 장남 서학균의 처 정씨가 정말경(鄭末慶, 1881~1932), 2남 서석균(철균)의 처 최씨가 최실경(崔實慶, 1888~1965), 3남 서덕균의 처 이씨가 이덕수(李德秀, 1889~1955)이다.
둘째 며느리인 최실경의 아버지는 최대림(崔大林)으로, 대구광학회 설립에 동참해 활동했으며 국채보상운동에도 활발하게 참여했던 인물과 동일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셋째 며느리 이덕수는 대구에서 유명한 오산 이종면(李宗勉, 1870~1932)의 딸로 추측된다. 이종면과 정경주 여사의 남편 서병규는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함께했으며 연배도 한 살 차이로 비슷해 여러 인연으로 사돈을 맺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이종면은 대구 협성학교를 설립한 교육자이자 경제인이었으며 대구광학회 발기인으로 참여해 계몽운동을 시작했다. 대한협회 대구지회 활동도 기록에 보인다. 이처럼 서병규와 이종면은 대구를 대표하는 대자본가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다.
◆숨어 있던 할머니의 기억
발기문 명단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정운갑 모 서씨'는 서채봉(徐彩鳳, 1859~1936) 여사다. 정봉원의 부인으로, 취지문에는 유일하게 '정운갑 모(母)'라는 어머니 자격으로 등장하고 있다. 서채봉 여사의 직계 후손 정우영(고손자) 씨에 따르면 "어머니로부터 들은 기억으로 할머니는 호랑이 같은 분이었다. 기개가 대단하다는 말씀을 들었다"고 말했다.
정운화 처 김씨는 김달준(1877~1956) 여사이다. 정운화는 국채보상운동에서 '정운화'로 표기되기도 하고 '정운하'로 표기되기도 한다.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 비에는 '정운하'로 표기되어 있는데 당시 이를 보도한 신문들의 표기가 달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가계도를 바탕으로 정운화(鄭雲華)가 정확한 이름임을 확인한 것도 이번 연구의 성과다. 이제 미상으로 남은 부인의 이름은 단 한 명, '김수원 처 배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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