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국정화 무엇이 옳고 그른가?
이분법적 구분한 것이 오히려 비정상
각자의 취향'공동체에 맡기면 될 일
민주적 논의 통해 탄력적 결정돼야
요즘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지만 별로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문구 중의 하나가 "비정상의 정상화다". 이 정부의 국정 어젠다로 설정된 '비정상의 정상화'는 과거로부터 지속되어온 국가사회 전반의 비정상을 혁신하여 기본이 바로 선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비정상은 부정부패, 부조리, 불법, 편법 등을 일컫고 정상은 법과 원칙이 바로 서는 투명사회를 의미하니 이보다 더 좋은 국정 어젠다도 없을 듯싶다.
이 국정지표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에 적용되는 것을 보고서 '정상'과 '비정상'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무엇이 과연 정상이고, 무엇이 도대체 비정상인가?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정상은 좋은 것이고, 비정상은 나쁜 것이다. 그러므로 비정상을 정상화한다는 것은 당연히 좋은 것이다. 이러한 논리가 우리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은 여기서 멈춘다. 우리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얼마 전 선정성 논란을 불러일으킨 교복 광고를 보면서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유명 가수가 자신의 소속사 걸 그룹과 함께 등장하는 광고에는 "재킷으로 조여라, 코르셋 재킷! 스커트로 깎아라, 쉐딩 스커트!"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여성의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선정성 논란으로 결국 폐기처분 되었지만, 예뻐 보이려는 욕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힙라인이 도드라져 보이게 치마를 줄여 입는 것은 정상일까, 아니면 비정상일까?
이런 문제가 우리 사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여름 독일에서도 고등학교 여학생들이 핫팬츠를 입어도 되는지, 허용해서는 안 되는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다. 이 문제는 "핫팬츠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재미있는 토론으로 번졌다가 결국 구성원들의 상식에 맡겨야 한다는 결론으로 끝났다. 지난 세기 1970년대 초에 대학을 다닌 나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대학생 시절에 몇 번 경찰서에 잡혀갔다고 얘기하면, 사람들은 으레 학생운동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장발 단속에 걸렸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장발과 미니스커트가 '비정상'이었다.
지금 우리가 추억 삼아 얘기하는 지난 시절의 비정상은 모두 정상화되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군인같이 단정한 머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조신하게 긴 치마를 입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어느 누구도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문제 삼지 않는다. 우리의 이웃이 머리를 스님처럼 밀고 다니든, 장발을 하고 다니든, 아니면 상투를 틀든, 미니스커트를 입든, 핫팬츠를 좋아하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법을 지키고,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비정상의 정상화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비정상의 사전적 의미는 '정상이 아님'이다. '이상' 또는 '변태'가 유의어로 사용된다. 비정상을 규정하기 위해선 이미 정상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프랑스 철학자 푸코에 의하면 권력을 가진 자들은 스스로를 정상이라고 생각하며, 이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끊임없이 '비정상'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이 당시 권력층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정상과 비정상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한 것이 비정상이고,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각자의 취향과 공동체적 감각에 맡긴 것이 정상이지 않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다원성에 토대를 두고 있다면, 세상에는 다양한 의견과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논의와 공동감각에 맡겨야 하는 일들이 있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은 이러한 민주적 논의를 통해 탄력적으로 결정되는 법이다. 그것이 정상이다. 그러는 대신 자신만이 옳고 정상이라는 독선의 관점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한다면, 그것이 바로 비정상이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당연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너무 독선적으로 추진하다 보면 거꾸로 '정상의 비정상화'를 야기할까 봐 걱정된다.
※이진우: 1956년 경기도 화성 생. 연세대 독문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 철학박사. 계명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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