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 인사이드] JTBC 드라마 '송곳' 뜨거운 반응

우리사회 부조리 고발…'약자의 반란' 가슴 뭉클

지난해 화제작 반열에 올랐던 '미생'에 이어 JTBC 드라마 '송곳'이 약자들을 대변하며 열띤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달 24일(토) 첫 방송된 후 기대 이상의 시청률과 함께 폭발적인 호응을 끌어내는 중이다. '미생'과 마찬가지로 웹툰을 원작으로 했으며 대형마트를 배경으로 부당한 해고사태에 맞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그려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미생'이 비정규직 사원의 고군분투를 통해 우리 사회의 이면을 보여준 것처럼 '송곳' 역시 부당한 상황에 맞서거나 또는 어쩔 수 없이 타협하는 이들을 캐릭터화해 이 땅에 만연한 부조리를 알리고 있다.

◆첫 방송과 동시에 열띤 반응

첫 방송된 24일 '송곳'의 시청률은 2.7%(닐슨코리아 수도권 유료가구 광고 제외 기준). 2회 역시 2.6%를 기록했다. 1회에 비해 0.1%포인트 감소했지만 오히려 타깃 시청률(방송사별로 연령대 등 특정 시청자층을 고려해 선별적으로 파악하는 시청률)이 올라 향후 안정적인 궤도 진입을 점칠 수 있게 됐다. 비지상파 드라마로서는 높은 수치의 오프닝 스코어다.

3, 4회에 이르러 스코어는 하락했다. 1% 후반으로 떨어졌다가 4회에서 다시 2% 초반대로 회복되는 등 변화를 보였다. 다행스러운 건 시청률보다 화제성이 여전하다는 것. 체감시청률이 그만큼 높다는 말이다. 3, 4회가 방송된 이후에도 '미생'과 비교하며 '한국사회의 이면을 보여주는 드라마' '소시민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속 시원한 작품' 등 유사 내용의 글이 관련기사 댓글 창 및 SNS에 넘쳐났다. 더 고무적인 건 앞서 이 드라마가 기획될 무렵 '중앙일보 계열 종편사 JTBC가 이런 내용의 드라마를 다룰 자격이 있느냐'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던 네티즌들도 막상 본방송이 시작된 후 잠잠해졌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텍스트 자체의 의미에 공감하며 '세상에 나오는 것만으로 가치 있는 드라마'라는 쪽으로 의견이 쏠리고 있다.

이처럼 대중이 '송곳'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 드라마가 가진 설득력 강한 주제의 힘 때문이다. 2003년을 배경으로 대형마트에서 벌어지는 대량해고 사태를 다루고 있는데, 단순히 노사갈등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개인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겪을 수 있는 부당한 사건들을 적시 적소에 삽입해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를테면, 학창시절 대놓고 촌지를 바라는 속물교사를 등장시키고 대통령 선거가 진행 중일 때 정권을 잡기 위해 군인들을 대거 선동해 특정후보를 지지하도록 유도하는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등의 방식이다. 여기에 적당한 유머를 가미해 재미를 주고, 한 가지 상황에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하는 이들의 상황을 다각도로 보여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경험해봤음 직한, 또는 구전으로 전해 듣거나 충분히 미뤄 짐작해볼 수 있을 듯한 내용을 가시화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바뀌는 거야' '노동자라고 다 선한 사람이 아니고 고용자라고 해서 다 악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약자와 강자가 있다는 사실' 등 명대사들이 포인트를 찍어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또한,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건 잘못된 게 아니냐'라고 물음을 던지듯 적당히 선동적인 톤으로 시청자들을 흥분시키기도 한다. 이 선동성을 불온하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체감으로는 상대적으로 많은 이들이 '송곳'을 응원하고 있는 듯하다. 내용이 불편하게 다가올 수는 있겠지만 '이런 드라마가 한 편쯤은 나와주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실어 '변화는 힘들겠지만 사회에 파장을 일으킬 순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기 웹툰 원작, 감독 연출력 호평

이 드라마의 원작이 네이버에 연재되고 있는 동명의 인기 웹툰이라는 사실 역시 화제성 지수를 높이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미 온라인에서 화제작 반열에 오른 웹툰이라 탄탄한 팬층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드라마화가 결정되기 전부터 드라마 또는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가정 아래 '가상 캐스팅'이 진행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 때문에 지현우와 안내상 등 주연배우들의 윤곽이 드러났을 때 일각에서는 '어울린다' 또는 '어울리지 않는다' 등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단, 뚜껑을 연 뒤에는 전반적으로 호평 일색이다. 베테랑 연기자 안내상에 대해서는 두말이 필요 없고, '송곳'처럼 심각한 내용의 드라마에서 연기한 적 없었던 지현우 역시 '원작 웹툰의 캐릭터와 싱크로율이 100% 일치한다'는 말과 함께 칭찬을 듣고 있다. 그룹 슈퍼주니어의 메인 보컬로 처음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게 된 예성과 '슈퍼스타K' 출신 박시환 역시 합격점을 받았다. 연기에 있어서는 사실상 '초짜'인데도 무난하게 캐릭터를 표현하며 극 전개를 돕고 있다는 평가다. '올드미스 다이어리' '청담동 살아요' 등 시트콤과 영화 '조선명탐정' 시리즈 등을 만들었던 JTBC 김석윤 국장의 연출 역시 기존 웹툰 팬들과 드라마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고 있다. 웹툰의 기본 틀을 따라가면서 드라마에 어울리는 기법을 채택해 적절한 재미와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네이버 역시 '송곳'을 연재함으로써 자사에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층을 일부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있다. 흔히 온라인의 2대 포털사이트라 불리는 다음과 네이버가 각각 극단적인 성격을 띠며 서로 다른 이미지를 가지는바, 연재되는 웹툰 역시 뚜렷하게 상반된 개성이 드러났던 게 사실이다. 다음의 경우 진중한 내용의 웹툰이 많았던 반면 네이버는 통통 튀고 트렌디한 작품이 주를 이뤄 양대 포털사이트가 공략하는 타깃층을 엿볼 수 있었다. '미생'의 원작 웹툰이 다음에서 연재됐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송곳' 역시 네이버가 아닌 다음 사이트에 실리는 게 누가 봐도 어울리는 일이다. 하지만, 네이버는 오히려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싶다고 작정이라도 한 듯 자사 웹툰 코너에 '송곳'을 투입해 온라인 유저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우리도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이 한 편의 웹툰을 통해 대중에 인식시킬 수 있었다.

JTBC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 까르푸 대량해고 사태를 모티프로 삼은데다 실존인물을 기반으로 캐릭터를 만든 작품인 만큼 사회적 파장을 고려한다면 선뜻 방송을 결정하기 힘들었을 법한 일이다. '송곳'을 방영한 후에는 약간의 문제만 생겨도 '그 드라마를 방송한 회사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비난을 들을 수 있어 부담이 됐을 터. 단순히 시청률과 화제성만 고려해 방송을 결심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란 추측이다. 이 때문에 오히려 대중은 '송곳'의 드라마화에 박수를 보내며 기뻐했을 듯하다. 국내에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올 회사가 있을 순 없다. 그런데도 이 드라마를 내보내겠다고 결심한 건 어쨌든 이 방송사가 '욕먹을 일'을 최소화하고 개선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대중의 입장에서도 이런 류의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는 시기가 왔다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송곳'의 완주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송곳'은 12부라는 짧은 주기로 전파를 타고 있다. 이달 말이면 방송이 끝난다. 드라마 한 편이 얼마나 거창한 의미를 담아낼 수 있겠느냐마는 재벌가의 상속싸움, 또는 연애와 복수 등 흔해 빠진 '한국형 소재'가 넘쳐나는 드라마 시장에 색다른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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