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한 건축가 아돌프 로스는 자신의 저서 '장식과 범죄'(1908)에서 "모든 예술은 에로틱하다"는 충격적인 선언을 한다. 이 같은 발언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갈 무렵 빈은 부르주아적 규범을 중시하는 사회였고, '에로틱'과 같은 퇴폐적인 표현은 점잖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로스의 이 같은 선언은 한 사람의 화가를 겨냥한 일종의 '공격'이었다. 바로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미술에 대한 비판이다.
클림트의 작품세계가 그리고 있는 주제는 매혹적인 여성의 에로티시즘 그리고 영원한 육체적 사랑으로 요약될 수 있다. 서투른 붓질이 자칫 표현의 천박함을 드러내기 십상인 이 같은 세기말적 주제를 클림트는 과연 미술사의 거장답게 품위 있는 분위기로 연출했다. 모든 미술이 필연적으로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듯, 클림트의 작품들은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을 덮고 있던 사회적 정서에 대한 작가적 해석이다. 1900년대 빈은 200만의 인구로 런던 그리고 파리와 함께 유럽의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중심지였다. 산업혁명의 물질적 혜택을 톡톡히 본 빈 사람들은 사치와 향락에 빠져 있었고, 자신들의 퇴폐적 일상을 문화라는 허울로 교묘히 위장하고 있었다. 클림트의 작품들은 위선이 가득한 부르주아적 혹은 빅토리아적 엄숙함을 노골적으로 묘사했다. 빈의 사교계는 클림트의 작품에 열광하였지만, 동시에 혹독한 탄압이 가해졌다. 그것도 아주 고상한 방법으로.
황제 프란츠 요제프는 클림트의 탁월한 예술성을 인정해 황금공로십자훈장을 수여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에 대한 국립미술학교의 교수 임명은 세 번씩이나 거부되었다. 뛰어난 작품성은 인정하나, 국가를 위한 미술가들을 키우기에는 부적합하다는 말이다. 이 같은 정치적 탄압에 분노한 클림트는 "검열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제 국가의 지원 따위는 모조리 거부할 것이다"는 말과 함께, 그 이후 국가의 어떠한 주문에도 응하지 않았다. 국가가 자신을 거부하면, 자신도 국가를 거부할 수 있다는 예술가의 자존심을 보여준 것이다. 검열은 권력의 속성이다. 특히 자기정체성의 위기로 실존적 공포를 느끼는 권력이 검열기제를 더욱 세차게 가동시켰다는 것은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결국 스스로 불안감을 극복하지 못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권력의 횡포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낸 클림트는 예술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예술은 시대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미래에 대한 예견이다. 예술은 시대적 긴장감을 변증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항상 '전복'을 꿈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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